내가 경험하지 못한 한계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일을 쉽게 믿지 않는다.
특히나 귀신/전생/사후의 세계등은 더더욱 믿기 싫어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것에 대한 거부감은 잘못된 생각인듯 하다.

광고 "니들이 게맛을 알어?"

게맛을 본사람과 안본사람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게를 먹어본 사람은 맛있다 맛없다를 분명히 이야기 할 것이지만 게를 안먹어 본사람은 알 수가 없다.
게맛을 못 본 사람중에 게는 맛이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사람도 있을것이다.

정치인들의 골프문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기념일날 골프쳤다. 이런시국에 골프쳤다.
내기골프 명목으로 향응을 받은것은 문제시 해야겠지만 골프도 스포츠의 하나이다.

만약 여러분들 중 특정기념일날이나 시국이 흉흉한때에 헬스장에서 운동한다고 밖에 강변나가서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이 있으면 욕을 할것인가?

아마도 골프를 쳐본 사람이나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그일을 크게 문제시 하지 않을것이다.
(사실 골프는 내기골프인 경우가 90% 이상이기 때문에 삐딱하게 보는 시선을 피할수는 없다)

게맛을 본사람과 안 본사람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다른예를 하나 카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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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차원은 점입니다. 여기에 사는 생물이 있다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1차원은 선입니다. 여기에 사는 생물이 있다면 앞 뒤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2차원은 면입니다. 여기에 사는 생물은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3차원은 입체공간입니다. 여기에 사는 생물은 전후좌우, 아래 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4차원은 3차원에 시간을 더한 개념입니다. 고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이 가능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차원이 존재합니다. 초끈이론에서는 11차원까지 논의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3차원적 공간세계이나 시간의 영향을 받으므로 4차원적 세계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3차원적 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만약에 인간이 4차원적 세계의 원리의 인식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시간의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간이란 개념은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의조차 내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4차원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3차원적 관점에서 2차원 세계를 한번 여행해 보도록 해보겠습니다. 일단 2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생물체인 A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A는 2차원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3차원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인식도 못합니다.
마치 인간이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4차원적 시공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면으로 된 2차원 세계의 생물인 A는 항상 전후좌우의 움직임 밖에 인식을 못합니다.
앞을 전진하고 있는 A를 3차원 존재인 제가 위에서 바라보며 A의 이름을 부릅니다.
A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전후좌우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A의 이름을 다시 부르자 A는 공포에 떨면서 마구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나는 도망가는 A의 앞을 손가락 하나로 가로막습니다.
A는 눈앞에 갑자기 커다란 지문 같은 것이 도로에 찍히자 A는 뒤를 돌아서 다시 도망칩니다.
여기서 A의 앞에 손가락이 아닌 지문이 보이는 이유는 A가 2차원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문이 찍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외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커다란 신문지 하나가 길바닥에 갑자기 쨘~하며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A는 너무 놀라서 골목을 가로질러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궈버리며 안도의 숨을 쉽니다.
그러나 A가 어디에 숨더라도 나는 그를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2차원적 면의 세계에는 높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벽이나 지하나 지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A는 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내가 A에게 행하는 모든 것은 A의 눈에는 기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A는 나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나를 경배하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나는 A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공간으로 들어 올립니다.
A는 비로소 공간인 3차원을 경험하며 미지의 세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듭니다.
그리고 2차원적 사고를 버리고 3차원 세계의 원리를 터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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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차원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3차원이라는 공간속에서도 2차원적인 경험만이 있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3차원, 4차원의 경험까지 해본 사람도 있을것이다.

2차원의 경험밖에 없는사람은 3차원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2차원만 경험한 사람은 3차원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겠지만 어떠한 한계에 부딧쳐 그 벽을 넘지 못한
사람일 것이고 4차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3차원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고 왜 그 생각을
하며 앞으로 저런 상황에 부딧쳐 고생하겠구나라는 것까지 훤히 보일것이다.

4차원을 경험한 사람들중에 아주 유명한 몇 사람을 소개하자면,
일지매와 홍길동이다.
그리고 중국에는 손오공이 있다.
그들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아주 대단한 인물들이다.

어제 우연히 EBS 교육방송의 운동과학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 반응할 수 있는 한계치는 통상적으로 0.1초라고 하던데,
세계최고의 기량을 갖춘 운동선수들은 그 0.1초를 초월하는 경이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보통 0.1초가 한계치라고 하는것은 어떠한 상황이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뇌에 전달하고 명령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운동선수들은 이 상황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는데 의학연구원들은 두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첫째, 보통 판단은 되뇌에서 하는데 되뇌를 거치지 않고  경험이 저장되어 있는 소뇌에서 지름길 역할을 하듯
          시간을 단축 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둘째, 오감에서 바로 반응하여 총소리가 나자마자 그 진동이 피부로 전달되어 피부조직이 경험을 토대로 뇌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반응하지는 않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분명 남들보다 빠른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가끔 주식 무용담으로 차트와 재무제표등을 전혀 읽을줄 모르는 사람이 주식전광판에 움직이는 가격만을 보고
흐름을 읽고 판단하여 고수익을 내는 나이많은 어르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마치 숙련된 운동선수처럼 시각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남들보다 빠른판단을 하고 승리를 경험하는 것같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일반인들은 많은 한계를 격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고수들의 방법이 아닌 다른 접근법(재무제표등)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것 때문에 남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논리또한 맞지 않는것이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전생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거부감은 들겠지만 전생이 없다라고 단정 지을수는 없다.



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