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in79dotcom.JPG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이 노래에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카네이션을 달아 줄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보고픔과 서러움이 밀려왔던 것입니다.

 

 

"어머님 은혜"라는 이 노래는 사실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내용을 양주동 선생께서 요약하여 작사한 노래라는 것을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찬불가인데 불교적 요소라면 무조건 배척을 하던 기독교인들이

멋모르고 이 노래를 심각하게 부르는 것을 보면 내심 우습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Elder라는 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장로(長老)라고 번역되어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장로라는 말도 불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불교에서의 장로는 배움이 크고 나이가 많으며 덕이 높은 비구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불경에서 오래전 부터 등장하는 호칭입니다.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의 용어에 불교적 요소가 군데군데 많이 숨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부모은중경은 다른 경전들과 성격을 달리합니다. 

다른 불경처럼 심오한 가르침이 아니고, 세속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붓다의 설법입니다.

 

 

그 내용은 붓다께서 제자 아난다와 길을 가다가 사람뼈를 발견하고 갑자기 절을 하면서

뼈를 비유로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지에 대해

구구절절하고 아름다운 비유의 말씀으로 어머니의 높고 크신 은혜를 말하고 있죠.

여러분도 시간이 나시면 부모은중경을 검색해서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일상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비밀 하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시간입니다.

 


어제 나는 문득 시간이란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대체 시간이 무엇이길래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의 성공을 기다려 주지 않고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나 또한 의지와 상관 없이 그렇게 변해만 가는 것일까?

그리고 시간적으로 과거란 무엇이고 현재란 무엇이며 미래는 또 무엇인가?

 

 


시간이란 관념(이것도 불교용어입니다)이지 특정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사람이 의식이 있을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절하거나 죽은 자에게도 물리적인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겠지만

당사자가 의식이 없어서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니 그러한 시간은 무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것은 사람의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그 논거로 과거라는 시간은 지난날에 존재했었던 실체적 사건의 집합체이지만

과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길 없고 오로지 내 머리 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까.

 


미래라는 시간도 가능성 또는 상상의 시간으로서 실체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도 오로지 내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현재(지금)라는 시간은 어떨까요?

내가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도 현재에 생각하는 것이고

지금 생각하는 시간도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시간을 스쳐 지나지 않은 과거는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현재는 시간의 기준점이 되고 기준점은 변하지 않는 것이므로

우리들은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현재(지금)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은 순간적인 시간의 단위로서 찰나(刹那)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나(刹那) 또한 불교용어 입니다.

'찰나'라는 말은 Ksana의 음역으로 일념(一念)이란 뜻으로 번역합니다.

찰나(刹那)는 불교논서인 구사론(俱舍論)과 승기율(僧祇律)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이러한 찰나는 시간의 단위로 환산하면 0.013초이며,

순간(눈 깜박임)보다 더 짧은 시간입니다.

 


이렇듯 찰나라는 현재의 시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내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과거란 이러한 찰나와 찰나들이 모여서 기억으로 저장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미래란 무엇인가?

현재와 지금이란 찰나적인 시간이고

과거는 지나간 찰나들의 집합체로서 지나간 세월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미래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라 지나간 흔적도 없으니

여기서 나의 상상은 멈춥니다.

 

 


그리고 저는 미래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는 찰나적이라서 내가 미처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과거로 사라져 버리고

그렇다고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미래라고 할 수 없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라면

나머지 하나 남은 시간인 과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여러분들은 도통 헷갈리시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요.

내가 1,2,3을 순차적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나는 1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2와 3은 미래가 되겠지요?

그리고 내가 1이라는 것을 생각하자마자 1은 과거가 되버리고 2가 현재가 됩니다.

그리고 2를 생각하자마자 2도 과거가 되어버리고 3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찰나적인 시간에 1,2,3을 생각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내가 시험지 1번 문제를 풀려고 준비하자마자

1번 문제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2번 문제가 눈 앞에 도래한다면

언제 어느 세월에 문제를 풀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현재 사물을 본다는 것은 정당한 명제일까요?

내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사물에 빛이 전달되고 그 전달된 빛이 나의 안구에 반사되어

반사된 그 빛의 정보를 나의 안구의 시신경이 나의 두뇌로 보내고

두뇌에서 그 정보를 받아서 분석하고 분석된 그 결과물을 나의 두뇌가 보는 것입니다.

 

 

즉, 나의 눈이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뇌가 사물을 창조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물을 보는 것도 여러단계를 거치므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도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본다는 말이 되지요.

 

 

 

위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는 현재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재라는 짧은 시간에 우리들은 다만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고로 우리가 찰나적으로 현재에 생각한 것들은 필름의 한컷처럼 찍혀서

과거의 기억에 순차적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내가 그것을 생각함과 동시에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며 그것을 재현 시켜준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과거를 생각한다는 말이 되지 않나요?

그리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도

지금 현재에 생각하는 것이니

과거를 생각한다는 말이되고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도 과거에 본 것을 재생하는 것이고...

 

 

 

여기서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아하~ 하면서 무릎을 탁 치실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우리들은 프로그램화 되어있는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확정된 정보가 이미 저장되어 있는 뇌를 가지고

우리는 그것을 한개씩 끄집어 내고 그것을 현재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 시간에 말했듯이 우리가 결심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행동을 먼저하고 나중에 그 행동을 결심한다는 실험 결과도

제가 주장하는 위의 사례와 동일하지 않습니까?

 

 


더 쉽게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제가 지금 50cm의 가래떡을 준비했습니다.

 

현재는 내가 갓 태어났으므로 과거는 없고 현재와 미래만 존재합니다.

내가 떡국을 만들기 위해서 칼로 가래떡을 얇게 썰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의 떡이 썰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입니다.

 

이젠 두번째 떡을 썰기 시작하면 앞에서 썰었던 떡은 과거가 됩니다.

이렇듯 떡을 썰다보니 남은 가래떡은 25cm 남았고

나머지 떡들은 도마 한켠에 차례대로 썰어진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조각들이자 과거의 잔해들입니다.

 

처음의 50cm 였던 떡이 25cm 남았으니

나는 벌써 인생의 반을 산 것입니다.

남은 25cm의 가래떡은 나의 미래입니다.

나의 미래는 현재를 거쳐서 과거가 되기 위해서 지금 대기 중입니다.

 


나는 칼로 썰었던 떡의 맛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그 떡의 일부를 한줌 집어서 냄비에 넣고 끓입니다.

그리고 완료된 떡국을 맛있게 먹기 시작합니다.

 

떡을 한줌 집어서 냄비에 넣는 행위는

내가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요리된 떡국을 먹는 행위는

과거의 일부 기억을 현재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 오자구요.

그리고 예언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예언이란 미래의 현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보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이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이 어떠한 조건과 결합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원인은 결정 되어 있다하더라도 조건은 무지하게 많기 때문에

원인만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타임머신이 발명된다 하더라도 결정된 과거로 돌아 갈 수 있지만

결정되어지지 않는 백지 상태의 미래로 간다는 것은 이론상 맞지 않습니다.

그렇듯 과학이 엄청 발전해서 타임머신도 가지 못하는 미래인데도 불구하고

버젓이 미래를 예언하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간혹 나타나곤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보았길래 미래를 봤다는 것 일까요?

정답은 단 한가지 그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봤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현재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생각하거나 본다는 것은

과거를 생각하거나 보는 것이다라고 말씀드렸듯이

미래를 본다는 것 또한 과거를 본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확정된 미래를 보는 것 보다는

이미 겪었고 이미 보았던 과거를 기억하기는 훨씬 수월할 겁니다.

그러나 과거가 되어버린 기억을 자유롭게 끄집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미래의 예언은 우리의 삶이 미리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아뿔사...

내가 정말 골치 아픈 것을 발견했군요.

나의 생각이 틀렸기를 기원하면서...

 

 

그럼 다음 시간에...


나마스테~~

 


 



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