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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우주가 탄생하지 않던 시절에 한마음(一心)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태초의 하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곧 여러개의 마음이 생겨버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개의 마음들이 분리가 되면서 그 중 일부가 물질로 변해버리고
이러한 물질들 사이에 공간이란 것이 생겨서 물질과 물질의 구별이 가능해 집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물질로 변하지 않았던 나머지 마음(정신)들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공간과 물질을 통틀어서 우리들은 우주라고 말합니다.
물질과 물질 사이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정신적 매개체로서 공간이 존재하게 되고
물질과 물질 사이에 위치적으로 공간이란 거리가 생겼으므로
그것을 조건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생김으로서 물질들은 유동적이 되고
결과적으로 물질들은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일부의 물질간의 공간적 거리와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빛이 탄생합니다.
이렇듯 한마음은 우주를 이루었고 우주의 물질들은 물리적 물질과 화학적 물질로
구별이 되고 이러한 모든 물질들과 우주 공간에 여전히 비물질로 남아있는 마음들은
모두가 동시에 탄생했으며 우리들은 이것들을 물질적, 정신적을 포함한
광의의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에너지가 바로 물질이고 물질이 곧 에너지라고 합니다.
또한 양자물리학 세계에서는 물질인 입자가 비물질인 파동이며 파동이 입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 불변하고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어떤 인연을 만나서 저것으로 변하고 저것이 어떤 인연을 만나서 이것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물질과 비물질인 정신은 조건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다시 강조해보면 지금의 우주는 모두 에너지 덩어리인 한마음에서 비롯되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직한 마음 또한 세상의 창조가 가능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들으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의 각자의 마음이 만들어 내고
뇌에서 투영해 낸 가공의 거짓세계를 실제 세상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정신병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것 처럼 말입니다.
정신병자의 눈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며
내가 보기에는 정신병자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어느 것이 진실이냐라는 질문조차 애당초 존재하지 않습니다.
꿈의 세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꿈속에 나비를 꿈꾸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습니까?
우리가 외부의 세계를 눈으로 인식하고 코로 냄새를 맡은 정보를 뇌로 전달하면
뇌는 그러한 정보를 조합하고 판단해서 현재의 세계를 창조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투영을 항상 진실한 것으로 생각하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에 나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이 정보의 최종 결과물이 아니고
모든 현상들이 나의 뇌에서 일어난 것만이 최종 결과물이라면
나의 눈이 잘못된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반대로 나의 눈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해도 뇌가 이것을 잘못 인식한다면?
그런 가정이 성립된다면 우리가 보고 듣는 이 세상은 본래의 모습이 아닐지 모릅니다.
만약에 내가 사는 세상이 나에 의하여 가공된 거짓 세계라고 한다면
이러한 세상을 내 마음대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예전 70년대에 미국에서 뇌에 대하여 색다른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실험에서 사람의 뇌를 개봉하고 손가락 끝을 자극한 후 그 손가락과 관련있는
뇌의 감각지각 신경을 살펴 보았는데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즉, 손가락을 자극하면 신경이 환자의 뇌에 전달되어 즉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실험자가 손가락 신경과 연결된 뇌를 직접 자극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여러분들 생각은 손가락을 자극해서 뇌가 그것을 인지할때 보다
시간적으로 뇌가 더 빠르게 반응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요?
결과는 시간적 지연이 생겼습니다.
시간적 지연이 생겼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뇌를 직접 자극하면 동시에 뇌가 손가락을 자극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정상인데
결과는 뇌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방금 손가락을 자극 받았다고 느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내가 행동 해놓고 나중에 그 행동을 결심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시죠?
예를 들어 설명해 볼께요.
내가 오전 9시에 주식을 매수하리라 생각을 하고 10시에 주식을 매수했는데
이 경우 실제는 10시에 내가 주식을 매수 해놓고 9시에 매수계획을 수립했다고
나의 뇌가 스스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애당초 9시의 매수계획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입력이 됩니다.
이러한 실험이 당시 학계의 전문가들 사이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그 사물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를 담고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완벽하다는 가정하에서만 성립이 가능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도 실패를 거듭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챠트를 두고 생각해 봅시다.
챠트란 것도 우리가 저질로 놓은 결과물 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챠트를 보면서 열심히 주식을 사고 팔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구나 틀렸구나라고 판단하는 것도 행동이 선행된 생각이구요.
이 부분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요.
잘못하면 미쳐버릴 수 있습니다. ^^
저도 이 부분을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미로에 빠집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냥 이런 경우도 존재하겠구나라고 생각하시기 바립니다.
왜냐면 뇌가 우리를 속이든 속이지 않든 어차피 우리는 그러한 뇌에서 판단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러나 저런 이론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뇌의 특성을
잘 연구하고 잘 이용한다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번에는 다른 사례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켜드릴께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양자물리학에서 전자라는 것이 입자인가 파동인가에 대하여
실험한 결과 전자는 입자와 파동의 두가지 성질을 가졌음을 밝혀냈습니다.
즉, 전자는 평소에 파동의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관찰을 함과 동시에
파동상태에서 입자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은 평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자가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면 전자는 입자로 변해버려
관찰자의 눈에 확인 가능한 존재로 변해버립니다.
이 말은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관찰자가 관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관찰자가 관찰을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존재를 관찰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관찰자가 전자가 입자임을 증명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에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존재하던 전자가
관찰자가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면 즉시 입자로 변해서
관찰자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질 세계인 이 세상은 관찰자의 관찰행위에 의하여 창조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관찰행위란 세상을 관찰하겠다는 나의 마음이고
이러한 나의 마음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을 우리가 스스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로서 세상을 보는 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슈레딩거의 고양이라는 일화를 아십니까?
이것도 양자역학과 관련된 실험입니다. 제가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지요.
슈레딩거라는 과학자가 상자속에 고양이 한마리를 집어 넣고
전자의 미묘한 움직임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를 상자 안에 장치하면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몸을 약간만 움직이면 그 기계를 건들이게 되고
그런 경우에 전자의 작용에 의하여 독가스가 분출되어서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하루가 지난 뒤에 그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양이는 거의 99% 죽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답은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의 상태는
어떤 하나의 상태(죽거나, 살거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직 두 가지의 상태가 서로 중첩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찰자가 상자를 열어 확인하는 순간,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던 고양이는,
순식간에 살아 있거나 혹은 죽어 있는 두 상태 중 하나의 상태로 실체화 된다는 것이죠.
즉, 우리의 관찰 행위가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가시나요?
더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분이 밀폐된 공간에서 있으면서
주식을 매매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방안에는 컴퓨터 한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매수한 주식이 상승했습니까? 하락했습니까?
정답은 HTS를 열어보기 전까지 상승했거나 하락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즉, 상승과 하락의 중첩상태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관찰자가 되어서 컴퓨터를 켜서 HTS를 확인하지 않는 다음에는
결코 주식이 올랐다거나 내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두 가지 가능성 만이 존재합니다.
경기가 좋다고 해서 오를 확률이 80%이고 내릴 확률이 20% 인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50% 확률입니다.
즉, 나의 관찰행위가 주식이 오르고 내리고를 결정합니다.
슈레딩거의 실험이나 HTS를 통한 실험이나 모두 양자역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관찰자로서 확인하기 전에는 모두 파동으로 잠재적인 형태로 존재하다가
관찰과 동시에 입자로 변해버려 비로소 관찰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물리학자 닉 허버트는 자기 뒤의 사물이 형체없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양자스프로 존재하다가 재빨리 고개 돌려 쳐다보면
순식간에 아무 이상 없는 물리적 실체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예전에 저도 많이 상상해본 현상입니다.
위의 논제를 가지고 제 방식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시각 저는 이 방안에 홀로 앉아서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컴퓨터와 책상등 앞면의 공간과 벽에 걸린 액자 뿐입니다.
이것들이 현재 유일한 나의 세상이며 나머지 뒷 공간과 창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뒤돌아 보면 그때서야 뒷벽이 짠~하고 생겨버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재빨리 창문을 쳐다보면 창밖의 세계가 창조됩니다.
마치 어릴때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내가 관찰자가 되어 바라봄과 동시에 비로소 모든 것이 창조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방금 책상 위에 있던 볼펜이 보이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분명히 사용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책상 위에 볼펜이 나타납니다.
내가 도깨비에게 홀렸나요?
버스가 오고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버스 토큰이 만져집니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타서 호주머니를 뒤지니 토큰이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지폐로 버스비를 계산합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다시 한번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닝기리~ 토큰이 나옵니다.
이것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경우를 몇번 겪어 보셨겠지요?
이렇듯 세상은 양자의 세계처럼 내가 인식하거나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내가 의식하거나 관찰을 하면
즉시 입자로 바뀌어 내 눈에 보이게 됩니다.
간혹 볼펜이나 토큰의 경우와 같이 파동과 입자의 세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렇듯 세상은 관찰자가('나'라는 생각)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찰자로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갓난애기에게 세상이라는 관념이 존재할까요?
관찰자로서 내가 죽어버린다면 그와 동시에 세상이 계속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렇듯 마음, 생각, 기억, 감정으로 말해지는 '나'라는 중심이 없이는
세상을 인식할 수도 없으니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내가 세상과 개별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 경우에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내가 세상인 경우에는 세상을 인식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관찰 행위를 통해 다중 세계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생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는 그 무엇인가의 관찰행위가
우주의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단순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무척 어려운 얘기입니다.
생각을 넘어서, 생각을 하지않는 곳에 있는 것을 생각으로 추측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세상은 이렇듯 온통 일체유심조의 세상입니다.
그러니 내가 보는 세상이 여러분의 보는 세상과 같을 수가 없겠지요.
우리는 각자의 일체유심조에 의하여 각각의 세상을 보고,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중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며 지금도 계속 생성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세상은 "나(아트만)"라는 것이 존재함으로 생깁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무아의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으로서 우리 모두가 태초의 우주심이자 한마음(一心)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올린다고 그대로 믿으시면
여러분들의 세계관이 흔들리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사례들은 그냥 과학적 사실에다가
저의 개인적 상상을 대입한 나의 사상이자 세계관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세상을 이렇게 보는 법도 있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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