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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올리는 나마스테 시리즈도 어느덧 마무리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인도철학을 설명하다가 우연히 불교로 넘어왔는데 불교의 특성상 난해한 부분이 많아서

알기 쉽게 설명하느라 본의 아니게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우연히 접한 불교의 내용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었고

인간의 궁극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접근 방식이 타 종교와는 달리 너무 인간적이고

특히 심리학적 요소나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저에게는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께 감히 소개하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중요치 않은 대목이 없었으며

소홀히 넘어 갈 수가 없는 관계로 벌써 20회를 넘어선 장편의 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그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중요한 부분을 보충하고 서서히 끝을 맺을까 합니다.

욕심 같아서야 끝장을 본다는 심정으로 재미있고 상세하게 글을 올리고 싶지만

제가 특별히 많은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면서 설명을 하다보니

원래의 취지와 동 떨어진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부가되고

그것이 여러분께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우려감으로

대충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붓다께서는 진리의 세가지 징표로서 삼법인을 말씀 하셨습니다.

삼법인(三法印)이란 재행무상(諸行無常). 재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등

불교의 기본적인 3가지 진리를 말합니다.


이중에서 제법무아는 < 이 세상에 "나"라는 실체는 없다 >라는 진리로서

전에 연기법을 설명할때 무아론으로 여러분께 소개하였습니다.


오늘은 일단 일체개고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고

다음 시간에 재행무상에 대하여 설명을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서 즐거움만을 자꾸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생을 되돌아 볼때 즐거움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우리들은 살아나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위해 직장에 나갑니다.

배고파 죽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배불러 죽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백화점가서 멋진 쟈켓을 사서 입으면 기존의 바지가 웬지 초라해 보이고

바지를 구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지금 신고있는 구두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이렇듯 심지어 쇼핑하는데도 만족을 못하기 때문에 짜증스럽고 괴롭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따먹겠다고 해도 1시간 동안 혓바닥이 빠질 정도로 애무를 해야되고

그 다음 1시간 가량 손가락이 졸라 빳빳해질 정도로 거시기 삿대질도 해줘야 되고

결국 마지막 삽입단계에 접어들어 1분이라는 엄청나게 긴 시간의 피스톤 운동을 마치고

겔포스를 쏟아낸 후 뒤로 발라당 자빠져서 핵핵~ 거리면서 온 뼈마디가 쑤시고 난리입니다.

그것을 보고 여자는 니가 잉간이가? 짐승이가? 카면서 따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끈적한 콘돔으로 나의 싸대기를 갈기고 핸드백 챙기고 도망가버립니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짐승이라는 한마디가 자꾸 나의 머리속을 어지럽게 만들며

<짐승=물개> OR <짐승=토끼>의 공식을 풀지 못해서 한동안 괴롭습니다.

결론은 다음에는 아쉽지만 내가 조금 양보를 해서 1분에서 30초로 줄여 보기로 작정합니다.

내가 만족을 못하더라도 여자는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섹스란 것도 잠시 즐거울 뿐 이내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의무적으로 겪어야 합니다.

또한 티비를 틀면 방송국마다 임창정이 주연한 <파송송 계란 탁>를 패러디한

땅바기씨 주연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적인 광우병 영화인 <뇌송송 구멍 탁>과

부페식 통닭집(코스닭) 원래 주인을 추적하는 명바기씨가 우정출연한

과학수사시리즈물인 <BBQ 대리점 사건>을 본의 아니게 감상해야 되구요.

 


거기에다가 라디오를 틀면 땅바기씨의 힛트 앨범인

"2.M.B" (프로듀서 : 홍준표, 이재호  기획 : 강재섭)의 연주곡인 <대운하>와

미국의 골프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부른 전 국민의 애창곡인 <다줄꺼야>

별거중이던 신인가수 박그네양과 재결합 하면서 화음을 맞춘 <오빠 한번 믿어봐>

청계천에서 중, 고교생 합창단과 함께 부른 <촛불잔치>

일본 천왕과 함께 부른 <과거를 묻지 마세요>

영화 <BBQ 대리점 사건>의 주제곡인 <나는 문제 없어>등

이런것을 허구헌날 듣는 것도 정말 고통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땅바기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이명박 장로께서 땅투기에 몰입한 이유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몇일전에 제가 우연히 성경의 창세기 부분을 읽다가 놀라운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창세기 1:28 -

 


이 내용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왜 땅바기가 되었는지 잘 이해가 가실것입니다.

고로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너무 미워하지 맙시다.

그는 성경에 충실한 죄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원치 않게 또 기독교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위의 성경 구절을 읽다가 보니

기독교의 잘못된 세계관을 보는 것 같아서 내심 씁쓸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잘못된 말씀입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저러한 잘못된 단언적 명령을

그대로 받아드린 결과 어릴때 부터 기독교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난 서구인들이

개발을 목적으로 자연을 훼손한 이유를 이제 이해하였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잘못된 서구인들의 사상이 성경에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명바기 대통령께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건설 계획을 밀어 붙이는 이유가 저러한 자연을 경시하는 종교적 성향이

자기도 모르게 평소에 몸에 배여있거나 아니면 무조건 밀어부치는 왕회장 밑에서

실적 중심의 잘못된 경영철학을 배웠던 것도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러한 부분을 신의 명령어로 받아드리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마음에 자리잡았다면 우리 국민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엄연히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있고 특정 종교 국가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전에 제가 소개하였던 붓다께서 깨우치시고 우주의 진리라고 주장했던 연기법인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그러한 연기법을 대운하 건설에 대입해 보면 대운하가 생기면 일자리는 생기겠지만

그것을 인연으로 자연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연이 사라지고 그에 대한 영향을 받아 차후에 인간의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면 일자리 창출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현재 일자리 없는 사람들이 대운하 현장에 투입되어 취업을 보장 받는다 하더라도

일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대다수는 노가다 밖에 더 하겠습니까?

속칭 노가다라는 노동집약적인 직업은 임시직이기 때문에 장래를 보장받지 못할 뿐더러

대운하 건설이 끝나면 그들의 일자리 창출을 명분삼아

정부가 또 무슨 개발을 계획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국민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고

건설개발업자들을 먹여 살리는 계획입니다.

요즘 이런 저런것을 생각하니 저는 일체개고라는 말이 너무나 뼈속 깊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의 연속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돈 많은 왕회장도 자식들이 사고로 죽거나 자살을 하고

그분도 결국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이외에도 이건희 회장이나 김승연 회장 같은 사람들도

부모 잘 만나서 한 세상 편히 사는것 같지만

이 사람들이야 말로 최근에 이르러서야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어느누구 보다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도 괴로운 세상인데

하물며 빽없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우리같은 범부들은

그야말로 상식이 통하지 않고 불합리적인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바늘 같이 가는 목을 가진 관계로 음식을 삼키지도 못할 뿐더러 삼킨다 한들

음식이 뱃속에서 불덩이가 되어버려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는 등...

항상 배가 고파서 울부짖는 아귀가 산다는 생지옥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다음 시간에 소개할 재행무상이란 것은 모든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시간은 무심하게 미래를 향해서 흘러만 감으로

언젠가는 인간은 늙게되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의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아 결국 추함으로 바뀌어 버림을 현실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이렇듯 생로병사 자체가 모두 고통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에 대하여 집착을 함으로

고를 바로 보지 못하고 순간적인 낙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나마 어렵게 찾은 낙은 시간적으로 찰나이고 이내 고통의 어둠이 밀려 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순간적인 낙을 추구하기 보다는

고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닦음으로써

비로소 고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인간에게 고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이것을 해결해야 겠다는 결심으로 

붓다께서 출가를 하셨고 결국 이것에 대한 해답으로 깨우침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의 "미움도 괴롭고 사랑도 괴롭다"를 소개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불교의 삼법인 내용 중 하나의 진리인 일체개고를 법정스님이 잘 설명하셨네요.

 

그럼 다음 시간에... 나마스테~~

 

 

< 미움도 괴롭고 사랑도 괴롭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는

수행자의 걸림없는 삶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