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 뉴스정보
- 주식정보
- 유용한정보
- 포트폴리오
- 각종분석법
- 투자에 도움이 되는 글
- 가치투자재테크
- 로또645
- 로또마을
- 컴퓨터팁&테크
- 자격증&강좌모음
- 블로그팁&테크
- 스포츠종합
- 주식잡동사니
- 잡동사니
- 리치
인기 검색어

[인터리치]
쉬운돈벌기 제공 + 수익금지원
로또분석-플러스645
좋은책 모닝365
:+:+:+::[UCC 위젯 퍼가기]::+:+:+:
보험최저가로 가입하는요령 쉬운 돈벌기 방법
자이니즘(Jainism) 사상
3편에서 말했듯이 회의론자 산자야가 당시 종교인, 철학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이 주장하는 신 또는 영혼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대들은 두눈으로 직접 신, 영혼을 봤는가? 라는 반격에 대하여
인도의 사상가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인도의 철학은 황혼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산자야를 굴복시킨 철학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그 분이 자이나교를 창설한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입니다.
자이나교에서는 마하비라(위대한 영웅)이라 부릅니다.
참고로 마하비라라는 단어는 당시 인도에서 위대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칭호인것 같습니다.
불교의 법화경에도 보면 부처님을 마하비라라고 칭하고 있고 한역으로 대웅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절간의 대웅전은 마하비라를 봉안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마하비라라고 하면 자이나교의 니간다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하비라는 산자야에게 말합니다.
그대 말은 맞습니다. 영혼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있다고 말을 못하고 없다고도 말을 못합니다.
그러니 이런 논제에 대하여 당신 말씀대로 "나는 모른다"라는 말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저승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두가지 중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승이 있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되는데
저승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는 것과
저승이 있다고 생각하고 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승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좋은 세상에 가려고 생전에 선행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자기뿐만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서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즉, 마하비라의 말을 쉽게 설명하자면 저승이 있느냐 없느냐의 확률은 50:50인데
저승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방 X빠지게 이 글을 쓰고 있는 분에게 수고한다고
추천 한방 주거나 육보시(?)를 남발하는 선행(?)을 하기에는 천당갈 확률이
어중간한 50%라서 좀 거시기하고...
살아 생전에 게시판에서 맨날 남의 글에 태클모아태산 놀이를 즐기다가 윤회를 해서
장편소설을 쓰는 아리코님의 마우스나 키보드로 태어나서 하루종일 배때지 밀리고
분당 500타의 괴력을 보유한 열 손가락으로 졸라 두들겨 맞는 응보를 받거나
대보름날 산에서 손에 손잡고 강간수월해(?) 놀이를 즐기다가 염라대왕 앞에서
"강호동 엉덩이에 고추담그기 놀이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튱성!"
이렇게 씨바스러운 해골표 지옥에 자대배치 받기에는 50% 확률은 너무나 높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생전에 좋은 일을 행하고 죽으면 저승이 있다한들 지옥 갈 일은 없을 것이고
저승이 없으면 그냥 생전에 좋은 일만 하고 살았으니 마음편히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혹시라도 저승이 있을지 모르니까 미리 선행으로 보험을 들자 이겁니다.
어휴~ 이런식으로 비유를 들어야지 모두들 이해한다니깐요...
자이나교는 지,수,화,풍이란 물질에 정신이란 비물질을 인정하며
그 정신에 의지도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 의지란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불생불멸의 영속체 즉, 실체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이나교는 정신이나 의지를 매우 아끼고 소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물질인 몸(푸드갈라, Pudgala)에도 의지적 활동성이 있다고 합니다.
영혼(지바, Jiva)의 의지적 활동성은 상향성을 띄고있고
푸드갈라(몸)의 의지적 활동성은 하향성을 띄고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영혼은 하늘로 향해 날아가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몸은 자꾸 땅에 편하게 앉거나 누울려고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란 놈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몸과 결합할 수도 있고
영혼 스스로 혼자서 불멸불생의 상태로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영혼과 몸이 결합하면 각자의 습성 때문에 영혼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몸은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등 서로 대립적 활동관계에 놓이고
서로의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업(業)이라고 봅니다.
업이란 생전에 몸과 마음과 입으로 짓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윤회가 존재하면 반드시 윤회의 고리를 끊는 해탈이 반드시 존재하게 되지요.
사실 업, 윤회, 해탈의 개념은 불교나 자이나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힌두교에서 나와서 불교와 자이나교에서 그 사상을 도입한 것입니다.
근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인간의 행동(업)은 행위가 끝나면 업은 사라지지만
그 업의 흔적은 고스란히 영혼 둘레에 그림자처럼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대립적인 양방향성 활동성 때문에 영혼과 몸은 결국 분리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분리된 영혼(지바)은 영원히 혼자서 지낼 수도 있는데 다른 푸드갈라(몸)을 찾아서
새로 결합하게 되고 이것은 바로 윤회로서의 새로운 생명의 탄생입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다른 푸드갈라(몸)와 결합하는 지바(영혼)는 수 없는 전생동안
결합했던 푸드갈라(몸)와 지냈던 수 많은 업들이 점점 영혼의 둘레에 겹겹히 쌓인채
다른 푸드갈라와 결합하는데 이 때 전생에 쌓였던 업이 현생에 영향을 줍니다.
즉, 태초부터 바로 전생까지 축적되어온 업의 세력의 성질에 의하여 현생의
행복과 불행이 되어지고 이것은 바로 숙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입장은 자이나교와 좀 다릅니다.
불교도 업을 인정하지만 전적으로 전생에 내세를 맡기지는 않습니다.
현생의 노력에 의하여 어느정도는 인생이 바뀌어 진다고 하죠.
자이나교도 현생의 본인의 노력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태초부터 전생까지
쌓여있는 업의 흔적에 비하여 현생의 노력의지는 너무 미약하여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지바) 둘레에 두텁게 쌓여있는 업의 세력을 깨뜨려서 본래의 청정했던
영혼(지바)를 꺼낼 수 있으면 영혼은 자유자재로 선택의 의지를 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해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혼을 탈출 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그 두터운 업의 세력의 껍질에 구멍을 내야 된다고 합니다.
업의 껍질은 영혼과 몸의 방향성 대립 때문에 생겼고 그 업에는 물리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같은 물질인 푸드갈라(몸)를 공격하면 영겁의 세월동안 쌓인
업의 세력에 구멍을 뚫을 수 있고 그러면 본래 청정한 영혼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며 업에 가려진 영혼의 의지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이나교도들은 해탈을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기 위하여 고행을 합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힌두교에 흡수되어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현재 미약하지만 아직도 인도에 존재합니다.
자이나교의 수행방법은 엄격하기로는 세계 제일이죠.
예를 들면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논이나 밭을 갈때 작은 곤충이나 작은벌레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게됩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고 현재 인도의 자본은 90% 이상
거의 자이나교도들이 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교조 마하비라도 벗은 몸으로 걸식을 하다가
조롱과 돌팔매질을 당하기 일쑤였죠. 이들은 공의파라고 불리웠으며
불교에서는 그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현재에도 공의파 지도자들 중에 여성 신도들 앞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불알을 떠억~ 내놓고 설교하고 있는 지도자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우스광스럽지 않고 오히려 기풍있는 그들은 어디서나 존경의 대상입니다.
이들은 옷은 입지 않아도 항상 부드러운 빗자루를 손에 들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실내나 길거리나 혹시 움직이다가 벌레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걸을때나 자리에 앉을때에는 빗자루로 쓸어서 항상 확인을 합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숨쉬다가 작은 곤충이 코나 입으로 들어가서 본의 아니게
살생을 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흰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극심한 단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동시대에 태어나서 비슷한 이론과 자식 한명을 낳고 출가한 점,
석가모니와 마하비라 출신이 귀족 카스트 계급인 크샤트리아 출생인 점...
그 외에도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서양에서는 한때 불교와 자이나교를
같은 종교로 착각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단한 사상인 자이나교도 모순점은 존재합니다.
그들이 해탈을 하기 위해 고행하는 것도 전생의 숙업에 의해 결정된것인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현생의 모든것은 전생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그들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나타나는 것도 전생에 결정된 업이 나타낸 결과라면
자유로운 의지가 아니다라는 반문도 생깁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아힘사(불살생, 비폭력주의 사상)는 힌두교 사상이지만
전세계 어느 종교가 자이나교 처럼 이렇게 철저한 계율을 지키며
진정한 아힘사를 몸소 실천하며 고독한 종교의 길을 가고 있는지...
포교를 위해서 무자비한 살생을 일삼았던 서양의 종교에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인도에서 이런 위대한 사상이 존재했기에 후세에 전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가 탄생한 것이 당연한 결과가 아닐런지요.
다음 편에는 붓다이즘...
즉, 불교에 대하여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
이슈/로또/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