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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식(識)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번뇌와 망상으로 가려진 마음의 세계를 벗어나 본래의 청정함에 다가가는 것으로,

마침내 자기완성, 즉 해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구조를 스스로가 제대로 알아야지 마음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인지, 식별, 기억, 사고하는 것을 통틀어서 인식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외부의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안경을 벗어버린 상태를 경험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색안경 너머의 사물과 세계에 국한되는 지극히 제한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즉, 이것은 사실의 세계와 단절하여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남자들은 "야~ 졸라 맛있겠네"하면서 침을 꼴깍 삼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쁘다고 여겨지는 그들의 내부 장기에는 똥이 엄청 들어 있습니다.

즉, 장동건이나, 김희선이나 한낱 가죽푸대로 만든 똥자루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인식이라는 놈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굳어져서 두껍게 층을 이루어

우리 본래의 청정한 성품을 가두어 버리고 주위를 겹겹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부 세계를 바라보고 관찰 대상을 받아드리기 위해서

인식화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한 것이나,

배운적이 없는 사실은, 생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는 제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실의 세계에서 철저히 괴리되어 버린 까닭에 우리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 가는지도 모른체 의미 없이 고통스런 생과 사를 반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번 시간에 무아와 윤회의 모순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불교의 핵심 사상이 무아인데 힌두교의 윤회를 도입하면서 이론적으로 충돌이 생깁니다.

힌두교나 자이나교의 윤회관은 불변, 불멸의 실체적 아트만(자아, 영혼)를

전제로 한 윤회인데 불교에서는 무아를 강조하면 윤회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현생에 "나"라는 자아가 있어 그 "내"가 저지른 업을 다음 생에 태어난

그 "내"가 업보를 받아야 되는데 무아론의 특성상 주체도 없는 업의 발생을 두고

다음 생에 책임을 누구에게 묻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불교의 입장에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난제에 처한 불교계는 무아라는 것은 전체적인 연기적 세상에서 보면

무아라는 것이지 개인의 행위(업) 자체를 무아로 보는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주체없이 발생하는 업이 아니며 그 업은 아트만(자아, 영혼)이 아니고

행위 자체이며 그 업이 바로 윤회의 주체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윤회의 주체는 동일성 개념이 아니고 연기에 의한 연속성의 개념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건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아트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근본적인 불교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논란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무아라는 개념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라고 해놓고 문제에 봉착하여 해석을 두리뭉실하게 할 바에는

차라리 무아(無我)라는 단어를 공아(空我)로 바꾸었으면 이런 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붓다께서도 옳고 그름의 이분법을 벗어난 중도를 주장했고

반야심경에서도 색즉시공, 공즉시생이라고 밝혔듯이 무아의 단정적인 개념을 버리고 

공아(空我)라는 중도의 입장에서 설명하였으면 상대에게 훨씬 쉽게 설명이

가능해질 것 같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무아의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아론이 워낙 추상적 개념이어서

그 용어에 따라 그대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잘못 설명될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아와 윤회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 유식설이 등장하게 됩니다.

유식이란 요가차라(Yogacara)라 부릅니다.

이러한 유식사상을 만든 사람들은 철저한 요가행을 하는

수행자들의 깊은 선정체험에서 나온 사상으로 매우 실천적인 이론이었습니다.


유식사상에서 바라본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뿐으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사상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러한 마음을 다루는 유식사상은

현대의 심리학의 모태가 되는 대단한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을 능가하는 이러한 이론을 우연히 접하고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발생했거든요.

 

 

 


그럼 지금 부터 유식설의 내용을 보도록 합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하여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몸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과 정신 등의 6가지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외계의 사물을 인식할 때 6근(六根)을 동원 합니다.

6근이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말합니다.

이는 곧 눈, 귀, 코, 혀, 신체, 정신(생각)이라는 여섯가지 인식기관 입니다.

여기서 근(根)이란 대상을 파악하는 나의 인식주관을 말합니다.

 


그리고 6근이 인식하는 대상은 6경(六境)입니다.

6경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합니다.

즉, 물질, 소리, 냄새, 맛, 촉감, 일체존재를 말하고

여기서 경(境)이란 외부 대상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6근은 6경을 대상으로서 여섯종류의 인식작용을

생기게 하는데 이를 6식(六識)이라고 합니다.

즉, 6근에 의하여 외부 대상인 6경을 깨닫는 여섯가지 개별 인식작용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라 합니다.

 


눈을 통하여 물질을 분별했을 때에는 이를 눈으로 인식했다고 하여 안식(眼識)이라고 하며,

몸의 감촉을 통하여 알았을 때는 이를 신식(身識)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안식입니다.

 


이외에 정신 부분에 해당되는 분야가 바로 의식(意識)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의식이라는 인식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의식이라는 말은 이렇듯 불교에서 도입된 용어입니다.

이와 같은 의식이 일어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전5식(前五識, 안이비설신)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5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른 인식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두번째로 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禪定)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등이 존재합니다.

제5 의식인 이것은 극심한 수면에 들면 의식작용이 단절되며, 그리고 졸도하거나

의식불명일 때, 마취상태에서 의식작용이 단절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6근(五根)과

이들 인식기관이 분별하여 인식하는 6식(五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6 의식(意識)보다는 깊은 곳에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vijn na)이

존재하는데 이 제7 말나식은 "나" 자신을 스스로 "자아"라고 착각하고 있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의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죽을때 정신이 혼미해 지면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가끔 형태를 보입니다.

가령 의식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다가 임종할 시점에 잠시 약간의 의식이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당부를 하거나 죽음의 공포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말나식은 죽음의 끝자락에서도 삶의 집착을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살하려고 절벽에 서있다가 누가 등 뒤에서 실수로 어깨를 툭 치면은

절벽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거나 너 때문에 죽을뻔 했다며 지랄합니다.^^

 

이 7식에 의하여 업(業)을 지어서 우리가 윤회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윤회의 주체는 아닙니다. 말나식은 의식과 함께 죽음으로 사라집니다.

 


이 말나식은 일부러 어떤 의도적인 행위나 행동을 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음, 집착, 교만, 애착 등

네 가지 근본번뇌와 같이 하면서 업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예를 들면 '저 여자 맛있겠는걸...저 남자는 돈이 없어서 싫어...' 등등

나름대로의 잣대를 형성합니다. 반면에 사랑도 무척 강하답니다.

그리고 이런 말나식이 강한 사람은 의처증, 의부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지요.

다시 말해, 말나식은 바깥의 객관적 대상에 대하여 주관적 의식을 만듭니다.


이러한 마음을 현대 심리학이나 의학에서는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아집과 편견을 만들고 본래 청정했던 우리의 마음을 더럽힙니다.

그래서 이 제7식을 '오염된 의식'이라 부르고 수행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제6식보다 잘 드러나지 않고 제6식인 의식을 뒤에서 조정하며

한번 굳어지면 오래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마음이라 생각되어 정감도 갑니다.

 

 


오늘도 본의 아니게 이야기꺼리가 많아졌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윤회의 주체가되는 제8식인 아뢰아식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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