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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전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 같이 일상 용어로 우화 또는

시적으로 표현하여 누구든지 알기 쉽게 가르침을 펼치셨습니다.

불교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중국에 전파되어 노장사상과 결합되고

대승불교에 이르러 힌두적인 요소가 포함되고 선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 기복신앙과 합쳐지면서 나타난 현상인 듯 싶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다면

강아지 풀 뜯는 소리와 뭐가 다를게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늘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우리 불교계가 앞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현 시대에 들어와서 서구인들이 불교를 알게되고 세계의 석학들이

현시대에 당면한 물질만능주의와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불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인도의 팔리어로 된 초기불교의 삼장(경장, 율장, 주석을 담은 논장)이

영국의 학자들에 의하여 2,000년만에 변형되지 않는 부처님 말씀이

19세기 말에 스리랑카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것을 일본학자들이 연구 번역하여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불교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안그래도 대승불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많은 불자들 사이에서는

원래의 부처님 말씀 즉, 근본 불교로 되돌아 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근본불교의 정확한 이해는 곧 불교의 정확한 이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 우리 불교에서는 초기불전인 아함경은 내용이 쉽게 되어있어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난해한 화엄경 정도는 읽어야지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대승불교계의 근본불교에 대한 이해는 시정되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근본불교를 빼고는 뒤에 발달된 부파불교나 대승불교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라고 할 때 佛(불)은 깨우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깨우친 사람을 붓다(Buddha)라고 말하고

붓다라는 말을 한역으로 불타(佛馱)라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석가모니 부처님 이 외에도 인도에서는 이전에도 다른 붓다는 있었을 것이고

그 뒤에도 다른 붓다들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냥 부처님이라고 말하는데

원칙적으로는 정확하게 석가모니라고 부르는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대승불교에서는 비로자나불 이라든가 아미타불이라든지

많은 부처님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석가모니라는 말은 인도어로 샤카무니(Sakya-muni)라고 부릅니다.

즉, 샤카(석가)족의 성자란 호칭이란 말입니다.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Gatama-siddharta)

고타마 는 성이고 싯타르타는 이름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여래(석가여래), 세존, 석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붓타의 탄생과 열반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불경에 보면 붓다의 일생중에 탄생시와 열반, 깨달았을때 아주 장황하고

신화적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모든 종교라는 것이 그러하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어낸 이야기 일 뿐만 아니라 별로 여기서 설명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인간적으로 붓다의 생애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싯다르타는 기원전 약 563년전에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 근처의

조그마한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야부인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후 7일만에 돌아가시고 당시 관습대로 계모이자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하여 양육되었고 19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라훌라를 낳았습니다.

라훌라의 뜻은 장애물이란 뜻입니다.

싯다르타의 출가에 장애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런것을 종합해 볼 때 싯다르타는 오래전 부터 출가를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는 나중에 불교 최초의 비구니가 되고

아들 라훌라는 불교 최초의 사미승이자 붓다의 탁월한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평소 사색적이던 싯다르타는 우연히 성 밖에서 늙은이, 병든자, 장례식, 출가자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고난 뒤 싯다르타는 삶의 무상함에 인생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29세에 몰래 출가를 하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바가바(고행수행자), 웃다카 라마풋다(선정수행자),

알라라 칼라마(선정수행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하게 됩니다.

싯다르타의 스승의 이름을 처음 본 순간 저는 웃다가 죽는줄 알았습니다.

박아봐, 웃다가 넘어졌붓다, 얼레리 꼴레리... 요렇게 눈에 들어 오더군요.

싯다르타는 3명의 스승 밑에서 수행을 하였지만 자신의 의문점을 해결 할 수가 없어서

그곳을 떠나 히말라야에서 혼자서 수행을 하게됩니다.

그는 고행을 시작하여 죽음을 넘나들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반면에 자신의 의문점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자 육체가 살아있어야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죽음을 넘나들 정도의 고행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닳고

강가에서 목욕 후 어느 소녀가 준 우유죽을 먹고 원기를 회복한 후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도를 이루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선정에 들었습니다.

이리하여 그가 선정에 들어간지 7일만에 그토록 갈망했던 의문이 명료하게 해결되었고

당시 출가한지 6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 35세에 그는 마침내 깨우친 자,

즉 붓다가 되었던 것 입니다.

그 후로 그는 재가자 춘다의 상한 음식을 공양받고 병을 얻어서 80세에 열반에 들기 까지

45년 동안 걸식 유랑을 하면서 종족이나 신분의 귀천없이 제자들을 받아드렸고

그의 깨달음을 아낌없이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열반에 들기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엿보면

인간 싯다르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성자들 같으면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후에도 나를 믿어라 아니면 지옥갈 것이다.

이랬을 겁니다. 그런데 부처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붓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불상 앞에서 복을 달라고 절을 합니다.

분명히 진리에 의지하고 자신 스스로에게 의지하라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

그리고 붓다의 죽음 앞에서 울고 있는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울지 말아라. 이별이란 우리에게 가깝고 소중한 모든 것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네게 말하지 않았더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지워진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는 없다.

이 대목에도 붓다 자신도 언젠가 죽게 되어 있는(조건지워진)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수는 없다"라는 말로 그것이 곧 진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박한 늙은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눈물 겹도록 인간적인 싯다르타를 신격화 해서 금불상으로 모시고

신도들을 끌어모아 복을 빌게 만들고 어디서 굴러들어온지 모르는 천도제를

도입하여 망자가 살아있을때 불효해서 돌아가신 지금 뭐라도 해주고 싶은

유족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죽음을 팔아먹는 종교로 전락한 불교는 반성을 해야됩니다.

지금도 불교방송에 보면 천도제 광고를 하는 사찰이 버젓이 등장합니다.

천도제 1번하게 되면 적어도 500만원 이상은 듭니니다.

천도제에 대하여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조건지워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대들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라.

즉, 마지막 말씀은 수행에 게으르지 말라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붓다께서는 열반에 들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인이 되어 우주에서 사라진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부처의 화신이니 뭐니 하는것들은 다 사기꾼임을 아십시요.

적어도 인간 싯다르타는 우주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제자라는 요즘 조계종 승려들의 행태를 보십시요.

큰 절에 가면 주지의 선출을 놓고 몇 억대의 돈이 왔다갔다 합니다.

정치판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추악하며 심지어 승려 신분으로 룸싸롱 접대까지 마다하고

심지어 상대 후보의 음료수에다 약을 타서 정신을 잃게한 후 여자와 동침시켜서

사진까지 찍고 입에 담지목할 욕으로 협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것이 방송에 나가도 그 당사자는 법복도 벗지 않고 계속 승려생활을 합니다.

정말 부처님이 살아계시면 대성통곡을 하실겁니다.

붓다께서 살아계실때 그렇게 추앙받던 그 분도 이른 아침 동이 틀 무렵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며 묵묵히 바루를 들고 맨발로 탁발(걸식)을 나갑니다.

아침에 바루를 들고 부자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음식을 주든지 안주든지

하루에 일곱집만 차례대로 방문합니다.

어떤 짖굿은 자는 음식 대신에 돌을 담아 줍니다.

심지어 어떤 자는 돌을 던져서 사랑하는 제자인 목건련을 잃기도 했습니다.

차례대로 일곱집만 돌아 다녀서 음식을 얻지 못하면 그날 하루는 굶습니다.

그렇게 막강한 재력을 가진 장자나 왕족들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도 있는

영향력있는 붓다의 걸식은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나요?

그리고 차례대로 일곱집만 돌아 걸식했다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를 말씀드리죠.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나를 숙이는 것입니다.

걸식의 이유는 나 자신이라는 相을 떼어 내는 수행방법입니다.

그리고 일곱집을 차례대로 다니신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일곱집을 다녔으면 다음날에는 다른 일곱집을 다닙니다.

첫번째 집에서 밥을 얻었으면 나머지 여섯집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부자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평등하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계기로 그들이 스스로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불교에서 걸식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우리집 문앞에서 탁발승의 목탁치는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요즘은 승려들은 종단에서 승려들의 품위와 일반인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탁발을 못하게 한다나요. 세상 좋아졌지요.

그만큼 절간의 수입에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붓다의 탁발의 이유가 수행의 목적임을 불교계에서는 망각한 모양입니다.

마지막으로 열반시 하신 말씀 중에 조건지워진 것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연기법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진리도 연기법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이라는 것입니다.

연기법에 관하여 상세한 것은 다음회에 설명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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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나는 개그이야기를 만들었다.
내말을 믿고 나를 따르면 천당,
내말을 믿지않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
나는 하늘나라(우주)에 사느니라.

그럼 난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