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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철학
2017.01.05 01:29

범려에게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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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에게서 배울 점

관련인물

오자서 / 구천 / 부차 / 백비

 

 

와신상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상담.jpg

 

 

 

臥=누울 와
薪=가시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섶에 누워자고 쓸개를 핥는다. = 원한을 잊지 않고 지고의 노력을 한다.

 

토사구팽

토사구팽.jpg

 

兎=토끼 토
死=죽을 사
狗=개 구
烹=삶을 팽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의 준말

사냥하려는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사냥할 때 썼던 사냥개도 삶아먹는다.=이용할 만큼 이용해 먹고 난 뒤 필요가 없어지면 야박하게 버린다.

 

범려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정치가, 책략가로 자는 소백(少伯)이며 초나라의 태생으로 오나라의 오자서와 비교되는 인물로 초나라를 섬기던 문종의 눈에 띄어 초나라에 출사했다가 월나라로 가서 구천을 섬겼다고 한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의 왕 합려는 월나라 윤상왕이 죽었을 때 10년전 월나라에게 침략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여 월나라를 침공했다. 그러자 월나라 윤상왕의 아들 구천은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앞세웠고 오나라의 군대 앞에 세 줄로 선 뒤에 고함을 지르더니 모두 목을 베어 자살을 해버렸다.

 

어이없는 행동에 오나라 군사들이 어리벙벙한 상황을 틈 타 월나라 군대가 습격하여 오나라를 물리치고 합려는 화살을 맞았다.

 

합려는 죽기전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 왕 구천이 나를 죽였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라.”
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부차는 왕이 됐지만 가시가 많은 장작에서 자며 부친의 원수에 이를 갈았다.(와신=장작에 누움)

 

부차가 복수 할 것을 안 월나라 왕 구천은 신하 범려의 만류에도 선제공격을 했지만 전쟁에 패하면서 궁지에 몰린 구천은 범려의 충언에 따라 항복하고 말았다. 대부 문종이 항복의 사신으로 부차를 찾아갔으나 부차의 장군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해 문종이 돌아와 구천에게 이를 전하자 구천은 자결하려 했으나 오나라의 간신 백비를 포섭할 것이라는 문종의 비책으로 자결을 막았다. 문종은 백비에게 절세의 미녀와 귀한 보물들을 상납하고 구천의 구명 운동을 요청했다.


백비는 부차에게 
“이미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게 신하의 의를 다하기로 했으니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습니다.”
고 주장했으며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부차는 백비의 말을 받아들였다.

 

부차는 구천을 석실에 가두고 치욕스러운 마부노릇을 강요 등 치욕의 나날을 보내게 하다가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되겠노라”
라는 구천의 내키지 않는 충성맹세로 3년의 수모 끝에 월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누울 때마다 오나라에서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쓴 쓸개를 핥았다. 바야흐로 ‘상담’(쓸개를 핥음)의 시간이었다.  

 

(쓸개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목이 타들어 가는 듯 한 쓴 맛이었다.)


결국 간신 백비가 부차의 눈과 귀를 막는 역할로 국력이 흔들리게 되었고 부차는 월나라의 공격에 생포된 후에야 오자서와 손무의 진언을 듣지 않은것을 후회했다. 부차는 천으로 얼굴을 덮고 자결했고 백비는 자신의 공으로 월나라가 오나라를 함락되었으니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구천의 칼에 죽었다.


부차왕에게 백비를 추천한 오자서는 주위 사람들이 백비는 믿을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했지만 자신과 같은 신세를 안타까워하며 그를 중용했지만 결국 백비는 부차의 신임을 얻었고 간신 백비의 말에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후, 범려는 갑자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잠적하기 전 대부 문종에게 "월왕은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어도 부귀를 함께 누릴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니 대부께서도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십시오."라고 충고했지만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던 문종은 결국 범려의 예상대로 모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하게 된다. 

 

- 범려가 문종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 - 

 “공중에 나는 새가 기운이 다하면 좋은 활은 쓸모가 없고[鳥盡弓藏],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고[吐死狗烹], 적국이 망하면 책사는 반드시 모략을 받아 죽습니다. 월왕의 상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입니다[長頸烏喙].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부귀는 함께 누릴 수 없으니 천수를 누리며 살고 싶거든 속히 월나라를 떠나십시오.”


잠적한 범려는 이름을 바꾸고 장사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범려의 이름을 들은 제는 범려에게 재상 자리를 권유하지만, 범려는 고명이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고 재차 도망간다. 제에서 도망한 범려는 조로 와서 현재 산동성 도현으로 거처를 옮기고 도주공이라고 자칭했다. 여기서도 장사에 성공하여 막대하게 축재하였는데 늙어서 은퇴한 후 유유자적하였다.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전설을 언급한다.


범려가 상인으로서 큰 돈을 벌었던 비결

1. 시장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2. 운용 자금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그러기 위해 단계를 줄이는 유통이 필요하다. 

3. 파는 물건의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신용이다. 

4. 인재의 중요성을 알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5. 막대한 재물을 모았다면 바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2500년전의 경제학이 현대의 경제논리에도 부족함이 없는 원칙이다. 범려의 상인 기질에 가까운 현세의 닮은꼴은 워렌버펫? 이 원칙을 지키고 있는것일까?

 


범려의 처세술

기회가 왔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뛰어드는 용기와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모욕도 참아낼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인생의 정점에서 한 계단 내려올 줄 아는 절제와 공존의 철학이다.

 

절제와 공존의 철학?

 

범려처럼 권력에 안주하지 말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현명하지.

 

구차나 진시황제처럼 대업을 이룬 뒤 더 이상의 목표가 사라지면 자만해지거나 나태해진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인식시켜 줄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주위에 그럴만한 친구는?

 

#범려 #배울점 #구천 #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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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numi 2017.01.05 07:39
    '상인(商人)'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 사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원래 '상인(商人)'이라는 단어는 바로 상나라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바로 우리가 은나라로 알고 있는 나라가 바로 상나라이다. 상나라의 수도가 은허이기 때문에 은나라로 불리우기도 하였지만, 상족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가 바로 상나라이다. 상족의 전설적인 상인인 왕해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대 중국에서 상인이 등장한 배경과 그 역사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1600년전에 상나라가세워졌다고 하니 상족의 기원인 왕해의 삶은 그 이전부터 중국에 상업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창의성과 용감성은 상인의 덕목으로 지칭될 정도로 중국 상업의 역사에서 그의 영향은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이다. 역사에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상나라는 이후 주나라에 의하여 멸망을 하게 된다. 이때 상나라 출신은 망국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하여 상족 특유의 습성인 상업 활동에 치중하게 되고, 이로부터 '상인, 상업'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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