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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철학
2010.04.04 13:08

성경 창세기 1장 ~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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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 1장 ~ 요한계시록



http://kcm.co.kr/bible/kor/Gen1.html




믿음 / 소망 / 사랑

 - 믿음에 대한 불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한다.

   논리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는 설명은 없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불신이 생긴다.



 - 소망으로 인한 욕구

   잘못을 해도 하나님께 빌면 그만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뭐든 들어주니 간절함을 염원하며 탐욕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은 전쟁을 좋아하고 벌을 좋아하며 자신을 믿는자만을 구원한다.

   자신을 믿는자만을 천국으로, 자신을 믿지않으면 지옥으로 . . .

   뱀(사탄)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게 꼬셨고 하와는 또 아담에게 사과를 먹게 설득했다.

   조물주인 하나님은 왜 뱀과 선악과를 만들었을까?

   세상의 모든 인과는 하나님이 만들었고 설정하였고 결과까지 만드신건데, 왜 스스로가 이런 조물을 만들었을까?


   이러한 상황은 사고가 많이나는 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설치해놓으면 절대 사고날 일 없는 것을

   사고가 많이 나는 도로이니 불법유턴을 하지말라고 외치는 상황이나 다름없다.


   일어날 것을 방치해 놓지말고 일어나지 않게 발생할 상황을 제거해야지, 이건 알면서도 방치한 방관자의 모습이다.


   더욱 의아한 것들은 생사또한 하나님께 달려 있다면 구조요원들이 죽음을 맞거나 선행을 하다 죽음을 맞는

   결과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 사랑을 강조하다보니 미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자신과의 


 -  평등은 없다.

차별 - 성모마리아는 하나님처럼 절을 받을만한 그런 대상이 아니다.

(우상을 섬기지 마라라는 말 자체가 차별을 만든다)



http://blog.naver.com/cjseong123/60104585781




여호와

[<히브리어 Jehovah] <명사> ≪성경≫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겨레가 최고 유일신으로 섬기던 신. 천지를 창조하고 흙으로 아담과 하와를 빚어 온 우주를 다스리게 하였으며,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내어 보인 인격신이라 한다. 히브리어로 ‘그는 있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동의어> 야훼. <참고> 하나님.



야훼

고대 유대교, 특히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 

기원과 그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구약성서》<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에게 처음으로 이 신의 이름이 계시되었고(6:2∼3), 

또 이 신의 이름이 예히에 아셰르 예히에(<나는 스스로 있는 者이다>, 3:14)로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시나이계약)의 증표인 

계명(십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계명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인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유대교도도 이 계율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래 이름이 오래도록 잊혀져 왔다. 이것이 여호와로 판명된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원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었던 여호와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절대유일신으로 높여졌다.


마리아 -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자면 단군의 어머니(마늘먹고 사람된거나 추녀수태나 다를게 없슴)

마리아(아람어: מרים Maryām, 라틴어: Maria)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기독교에서는 흔히 ‘성모(聖母)’ 또는 ‘동정녀(童貞女)’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다.


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헤브라이어의 미리암(Mirjam;고귀함)에서 유래된 그리스어 이름이다. 헤브라이어를 라틴어로 직역하면 <바다의 물방울(Stilla Maris)>이지만, 잘못하여 Stilla를 Stella로 적었기 때문에 <바다의 별(Stella Maris)>로 해석되어 별이 성모(聖母)의 상징이 되었고, <샛별> <야곱의 별> 등으로 불렸다. 정식호칭은 <동정녀 성 마리아(Beata Maria Virgo)>이다. 여성을 존중한 중세 기사들은 성모를 <나의 귀부인(Madonna)>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근대어로는 Our Lady(영국), Notre Dame(프랑스), Unsere Liebe Frau(독일) 등으로 옮겨진다. 


생애

《신약성서》에 의하면 마리아는 다윗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목수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대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준 대로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마태복음> 1:28, <누가복음> 1:26∼38).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에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은 요셉은 가이사 아구스도(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에 따라 인구조사에 등록하기 위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는데, 그곳 마구간에서 예수가 탄생하였다(<누가복음> 2:1∼20). 헤롯왕의 유아살인을 피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은 애굽으로 달아났고 왕이 죽은 뒤 갈릴리지방의 나사렛으로 이주하였다(<마태복음> 2:13∼23).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 마리아는 그 제자들의 무리에 가담하였다(<사도행전> 1:l4). 그러나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성서외경 <야곱의 원복음서>에서는 정경(正經)에 없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마리아의 아버지는 요아킴, 어머니는 안나이며, 오랫동안 자식이 없던 양친에게서 하느님의 사자가 고지(告知)한 뒤 기적적으로 태어나 신전에서 자랐으며, 12살에 요셉과 정혼하고 16살에 수태의 고지를 받아 베들레헴 근교 동굴에서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 


마리아숭배

처녀수태 신화는 어머니가 순결을 지키면서 신에 의해 아이를 잉태했음을 보여 주어, 대지모신(大地母神)숭배 및 처녀숭배라는 이중 숭배로 인정된다. 처녀수태의 개념은 태어난 아이의 신성(神性)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매우 유효하다. 마리아의 수태고지(受胎告知)는 《구약성서》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된 <보라 처녀가 잉태를 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는 예언의 실현으로 해석된다. 초대 교부(敎父)들은 이 예언에 따라 성모 마리아의 처녀수태를 설명했는데,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아닌 신의 어머니로 결정되어, 이에 반대한 네스토리우스파(派)는 이단으로 파문되었다. 이 시기부터 동정녀 마리아숭배가 점점 확대되어 성모에게 봉헌된 성모마리아성당이 각 지역에 세워졌으며, 성모에 관한 설화도 급속히 민중에게 퍼졌다. 10세기 이후 <성모소성무일도(聖母小聖務日禱)>를 일반 신자들도 올리게 되었고, 유명한 <성모송>도 12세기에는 주기도문(주의 기도)·사도신경과 함께 올리도록 규정되었다. 그 밖에도 <삼종기도> <로사리오의 기도> <성모애상(聖母哀傷)> 등 많은 기도문과 찬가가 만들어졌다. 신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숭배가 널리 퍼짐에 따라 마리아 자신도 한층 더 신에 가까운 사람으로 높여졌다. 이는 교의로서는 죽은 뒤의 <몽소승천(蒙召昇天)>과 태어나기 전의 <원죄 없는 잉태>라는 2가지 의미를 가진다. T. 아퀴나스는 마리아숭배를 그리스도 예배보다는 하위에 있으나 다른 성인숭배보다는 상위에 있는 특별숭배라 명명하였으나 프로테스탄트 쪽에서는 마리아숭배에 대해 공격하였다. M. 루터는 그 폐해를 경고만 했을 뿐 숭배 그 자체를 폐지하려고는 하지 않았으나, J. 칼뱅은 마리아숭배를 우상숭배라고 하여 배척했고 오늘날에도 루터파 외의 프로테스탄트는 모두 부정적이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1950년 비오 12세는 성모 몽소승천의 교의를 정식으로 공인하였다. 고대 교회시대부터 민중신앙에서는 마리아숭배가 큰 의미를 지녔고 마리아의 기적이 각 지역에서 속출해서 수호성인이 되어 있다. 순례성지가 된 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투갈의 파티마, 멕시코의 과달루페이달고 등지에 성모가 출현한 기적의 밑바탕에는, 사회변동으로 인한 민중의 고뇌와 그것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써의 종교적 자각을 확실히 지적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귀의한다는 옛날부터의 마리아숭배를 중심으로 세계 각 나라 각계각층에 마리아신심회(信心會)가 설립되고, 마리아의 이름을 붙인 많은 수도회가 활동하고 있다. 


마리아의 축일

축일은 <주의 봉헌축일(2월 2일)> <성모영보대축일(3월 25일)> <성모승천대축일(8월 15일)> <성모탄일축일(9월 8일)> <성모통고기념일(9월 15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 등이다.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EB%A7%88%EB%A6%AC%EC%95%84_(%EC%98%88%EC%88%98%EC%9D%98_%EC%96%B4%EB%A8%B8%EB%8B%88)




예수

그리스도교의 시조(始祖). 그가 태어난 해를 서력기원으로 삼고 있다. <예수>는 <여호와(이스라엘의 하나님)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헤브라이어 인명인 여호수아의 그리스어 음역이다(정확하게는 예수스). <그리스도>는 본래 고유명사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뜻하는 헤브라이어 마시아하(메시아)에 해당되는 그리스어(정확하게는 크리스토스)이다. 《신약성서》 시대의 유대인에게는 구원자의 칭호로 쓰였으나, 다른 여러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고유명사로서 쓰이게 되었다. 


예수의 실상(實像)과 자료

《신약성서》 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다. 로마역사가 C. 타키투스는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때 그리스도 처형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고 있다(연대기 15:44). 로마의 저술가 수에토니우스는, 크레스투스의 꾐에 빠져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로 클라우디우스황제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쓰고 있는데(《황제전》 클라우디우스 25:4), 이 크레스투스가 그리스도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곱이 돌로 맞아죽은 형(刑)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유대고대지》 20:200). 유대교의 라비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마술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미혹시키고 배교(背敎)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탈무드》 산헤드린 43a)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신약성서》에서 알 수 있는 사항을 본질적으로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서》 속의 예수에 관한 주요 자료는 복음서인데, 복음서는 과거의 예수에 관한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그를 구세주로서 믿고 있는 초대교회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며, 변증이기도 하다. 복음서 저자들은 각각의 상황과 관점에서 독자적인 예수상(像)을 그리고 있는데,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하는 구절은 기본적으로 모든 집필 동기를 말해주고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에 관한 오래된 전승이 종종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전승이 이미 복음서 이전의 구전(口傳) 단계에서 선교·예배·교육 등 교회의 여러 활동에 적합한 방법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측면도 있다. 최근의 연구는 교회의 여러 활동뿐만 아니라 전승담당자의 사회적 상황도 전승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생애

예수가 태어난 해는 <마태복음(2:1)>에 헤롯왕의 통치하(BC 37∼BC 4)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2:1)>에 따르면 예수 탄생이 아우구스투스황제에 의한 호구조사 칙령 발포의 시기와 결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조사는 AD 6∼7년에 실시된 것으로 보지만, 칙령은 이미 BC 7년에 발포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베들레헴을 예수의 출생지로 하는 <마태복음(2:1 이하)>과 <누가복음(2:1 이하)>의 서술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유대인의 기대(미가 5:2)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며(마가복음 10:47 기타), 갈릴리의 나사렛 출신이었다고 추측된다. 아버지는 요셉,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형제자매들도 있었다(마가복음 6:3).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두 복음서는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이는 예수의 성성(聖性)의 근거가 된다. 소년시절에 관해서는 12세 때 예루살렘의 신전에서 선생들과 문답을 하여, 그 현명함에 사람들이 경탄하였다는 이야기(누가복음 2:41 이하)가 있을 뿐이다. 28년 무렵 요르단강 강변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제자들을 모아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민중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내쫓기도 하였지만 나중에 서술하는 바와 같이, 유대교의 전통적 가르침을 뛰어 넘어 행동하였으므로 율법학자나 바리새인 등 유대교지도자의 반감을 샀다.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일요일)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하기도 하였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주(週)의 목요일에 12제자와 유월절 식사(최후의 만찬)를 함께 하고, 그 가운데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유대의 최고법원(산헤드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죄로 사형을 판결받았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은 사형집행권이 없었으므로(요한복음 18:31)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를 반(反)로마운동의 지도자라고 하면서 사형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복음서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아볼 수 없었으나 유대인에게 져서, 그를 <유대인의 왕> 곧 반로마적 메시아의 참칭자(僭稱者)라 하여 예루살렘 교외(郊外)의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이것으로 예수가 실제로 반로마적 폭력혁명의 지도자였다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복음서에 따르면 그의 운동은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와 같이 이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대다수의 억압받는 가난한 민중을 치유하는 자는, 지배자쪽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더욱이 예수에게 모이는 민중 가운데는 그의 뜻과는 반대로 민족적 메시아왕국의 실현을 기대하는 자도 있었으므로, 지배층은 그런 점에서 더욱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처형에는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것 이상으로 로마인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는지도 모른다. 처형된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의하면 유월절의 날(유대 달력의 니산월 15일)인데, <요한복음>에 따르면 30년 4월 7일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예수의 활동기간은, 그 동안에 3번의 유월절을 세고 있는 <요한복음>에서 추정할 수 있다. 이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4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유대 지방에도 오래 머물렀다. 갈릴리를 예수의 주요 활동지로 하고, 예루살렘 체류가 1주일도 채 안되는 <마가복음>의 구성은, 유대교 지도자로부터 멸시당하기 십상인 갈릴리를 예수의 활동 장소로, 유대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장소로 나타내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유대교

예수는 유대인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음을 알리고(마가복음 1:15), 그 실현을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마태복음 6:10). 이 점에서 보면, 그는 유대교 계시문학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선교는 독자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접근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사실로 되어있다. 그가 행하는 악령 추방은 그 징표로 해석된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누가복음 11:20)>.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일임과 동시에 현재의 사실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에게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지배에 직면하여, 이에 대한 신앙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마가복음 13:32). 이제 태도 결정의 보류는 허용되지 않는다(마태복음 11:16∼17). 최후의 심판에 있어서 유대민족의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구원의 길은 각 사람마다의 회개와 신앙뿐이다(누가복음 13:1 이하, 마태복음 8:10 이하).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심판보다 은혜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태복음 5:45)>와 같이 본질적으로 사랑의 속성을 가진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곧 성스러운 초월적인 신은, 먼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에 쓰는 <아바>라는 말로서 친밀하고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부를 수 있는 가까운 하나님이기도 하다(누가복음 11:2, 마가복음 14:36). 또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열심히 찾아 헤매는 양치기, 잃어버린 1개의 은화를 애써 찾는 여인, 탕아가 돌아온 것을 기쁘게 맞이하는 아버지 등에 관한 일련의 비유(누가복음 15:1 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경건이나 공로에 대한 보수가 아니라 순수한 은혜의 선물로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요한복음 7:49)>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예수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던 세리(稅吏)같은 죄인과 식사를 함께 하며, 그들에게도 구원을 약속한다(마가복음 2:16 이하). 한편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며, 그 보수로서 구원을 얻으려는 자를 하나님은 물리치신다(누가복음 18:9 이하). 거기에는 교만의 위험이 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자는 의롭다함을 받고, 또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겸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받은 자에게는, 이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요구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따로 생각할 수 없으며, 이 2가지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가복음 12:28 이하). 그리고 사랑은 원수에게까지도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 이렇게 예수는 사랑을 철저하게 중시한 결과, 때로는 유대교 율법의 규정에 위배되는 언행도 나타났다.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였고(마가복음 3:1 이하), 법적·사회적으로 약한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여 이혼을 금지하였다(마가복음 10:1 이하). 율법에 대한 비판은 유대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고, 예수 처형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예수의 인격

예수는 율법 및 그 전통적 해석에 구애받는 율법학자와는 달리 스스로의 권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가르쳤다(마가복음1:22). 그 발언이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가 말하는 이 독특한 도입구는 큰 확신과 권위를 암시한다. 그는 율법을 뛰어넘어 행동하며 제자들에게는 절대적이고 철저한 복종을 요구한다(마태복음 10:37, 마가복음 8:34 이하). 그가 행한 기적은 하나님 지배의 징표이다. 그와 만나는 자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결단이 사람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영원히 결정한다(마가복음 8:38). 따라서 예수는 율법을 논하고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자, 많은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는 자 등의 범주를 초월하였다. 


부활

예수가 체포되자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곧 예수가 부활한다고 하는 확신을 품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었다. 그의 죽음을 《구약성서》에 씌어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바탕을 둔 속죄의 죽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보이셨나니(고린도전서 15:3∼5)>라고 전한다. 여기에는 부활한 예수가 뚜렷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상세한 것은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뒤에 성립된 복음서의 부활이야기에 들어 있다. 확실히 이러한 이야기들에는 교회의 신학적·호교적(護敎的) 모티브가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있다. 예수의 나타나심을 경험한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로마서10:9)>, <하늘로 오르게 하사 만물의 주로 삼으셨다(빌립보서 2:9∼11)>고 믿고 기도하면서, 종말의 때에 예수가 재림할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미술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미술에서의 그리스도상(像)은 그의 공생애(公生涯)를 통해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상과 교의적 표현인 예배대상의 단독상으로 대별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 초대교회의 교부(敎父)들이 논의하게 되었다. 《구약성서》에는 장차 오실 구세주(메시아)의 모습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사야> 53장에서는 구세주의 용모는 빈약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테르툴리아누스나 오리게네스와 같은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은 예수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헬레니즘세계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미술은 <시편> 45편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구세주상, 즉 이상화되고 인간으로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구세주상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모습을 창조해갔다. 이 경우 2가지의 표현형식이 나타난다. 짧은 고수머리이며 수염이 없는 청년상과, 검은 장발에 짙은 수염을 기른 장엄한 그리스도상이다. 청년상의 그리스도 표현이 생긴 배경에는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신상(神像)이나 영웅화된 경기자상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장발에 수염이 난 장엄한 그리스도상은 제우스신상이나 아스클레피오스신상·철학자상·교사상, 나아가서는 오리엔트의 군주상 등을 원형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무렵까지는 그리스도교세계 전역에서 이 2가지 형의 표현이 채용되었다. 그러나 뒤의 동유럽 중세미술(비잔틴미술)에서는 장엄한 그리스도상이 압도적이었다. 서유럽 중세미술에서 로마네스크미술시대까지는 2가지 형이 채용되었으나, 고딕미술시대가 된 14세기 이후는 검은 장발에 수염이 있는 장엄한 그리스도상이 우세해졌다. 이러한 미술에서 그리스도상 이외에 <참다운 초상> 문제가 있다. 이른바 아케이로포이에토스(사람의 손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 아닌)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는 다음 3가지가 있다. 먼저 그리스도가 갖다 댄 천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베껴졌다는 <성해포(聖骸布)>로서, 에데사의 압가르스왕 전설 속의 것과 성녀 베로니카의 것이 있다. 또 죽은 그리스도의 몸을 감싼 베에 전신상이 그려졌다고 하는 북이탈리아의 토리노성포(聖布)도 현존한다. 그리고 사도(使徒) 누가가 그렸다고 하는 초상 등 생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그렸다고 하는 초상도 전설화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용모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고 기록하였듯이, 이러한 <참다운 초상>은 후대의 그리스도교도의 성스러운 유물신앙이 낳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창세기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세상의 창조자 (신, 곧 야훼(히브리어)이자 하나님 (하느님))이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창조의 순서는, 빛과 어둠(첫째 날), 하늘(둘째 날), 육지와 바다, 식물(셋째 날), 해와 달과 별(넷째 날), 바다 동물과 새들(다섯째 날), 육지 동물과 사람(여섯째 날)이다. 6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한 후 신은 일곱째 날에 쉬었고, 이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안식일의 의미이다. 여섯째 날에 창조된 첫 사람인 아담과, 그에게서 창조된 반려자인 하와는 신으로부터 정복하고 다스리고, 생육하며 번성하는 축복을 받고(1:28)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에서 살게 되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였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였음이 주목된다. 이것은 인간이 알려고 해도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다.

 - 안타깝게도 창세기, 세상을 만든이야기에서 6일동안의 세상창조라는 내용에서 보듯, 시간을 만든 내용이 없다.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과 시간이 필요하다.

   물질은 하나의 물질과 또하나의 물질 즉, 2개 이상의 물질이 존재하여야 하며 이 물질들이 존재하면 시간은 자연스레

   생성된다. 이유는 물질과 물질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할 것이며 공간과 공간사이의 거리가 생겨 시간차를 발생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부분일까? 




출애굽기

http://kcm.co.kr/bible/kor/Exo1.html

《구약성서》 서두의 모세5경 가운데 제2경. 원래 별도의 명칭 없이 히브리어 원전 첫머리의 <… 이름들은 이러하다>라는 구절로 책을 구별하였으나,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책 내용을 참작하여 탈출(엑소더스;Exodus)이란 명칭을 붙였다. 


BC 1300년 이후에 쓰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저자는 모세로 알려졌으나 여러 원전들을 편집하여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주제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과, 여호와 신(神)과의 계약에 의한 율법 제정이다. 


앞부분의 탈출이야기는 이스라엘민족이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 모세의 어린 시절과 소명(召命), 이집트에서의 재난과 그로부터의 탈출,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며, 뒷부분의 율법이야기는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과 <계약의 글>, 장막(帳幕)에 관한 지시와 건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표면적으로는 모세를 주인공으로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성립 사실이 주제인 것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는 이집트 탈출과 공동체 성립의 바탕이 된 모든 일이 여호와 신의 주관 아래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나타나 있다. 특히 모세의 율법으로 서술된 십계명은 신약의 그리스도의 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 구약의 법이라는 의의가 있다. 


흔히 엑소더스(Exodus), 탈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의 종이 되었다가 풀려난 그들의 이야기?

먼저 왜 이스라엘 곧 야곱의 족속들이 애굽 곧 이집트의 종이 되었는가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는 열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 두명의 아들중 막내인 요셉을 이스라엘 곧 그들의 아버지가 편애하는 바람에 열한명의 아들들이 모여서 막내인 요셉을 땅에 파묻어 죽이려하다가 이스라엘의 열한번째 아들 베냐민의 만류에 수긍하여 애굽에 돈을 받고 그들의 동생을 팔아넘긴일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인류최초의 형제를 인신매매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듬니다. 각설하고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으나 애굽의 왕인 파로호가 요셉을 인정하는 일이 생겨났고 그로인하여 애굽의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말의 일들로 인하여 요셉은 부와 명에를 동시에 누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 이때에 그는 그의 형제와 아버지를 찾아서 애굽에 살도록한 것입니다. 애굽의 왕인 파로호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자식을 낳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난 것이지요. 그 많은 자식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애굽을 탈출하기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글로서 적어 놓은 것이 출애굽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저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저들의 형제를 돌봐준 애굽의 왕 파로호를 나쁜 사람으로 내몰고 그러한 글을 진리로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한심한 사람들이지요. 저러한 경우를 여러분들의 집안에 적용시켜보세요. 어디 그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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