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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2009.08.04 14:18

400년보다 훨씬 더 오랜, 저 천년고도 경주에 있는 불국사는 왜 헐어서 삐까뻔적한 고급 아파트를 지어버리지 않을까요?

종로에 있는 종각도 부셔버리고 남대문, 흥인지문을 교통방해되게 놔둘까요?

동의보감은 그런 차원과는 어쩜 더 높이에 있습니다.

지금도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생선, 썰어서 초장을 찍고 먹기만 하면 될 수 있는 그런 의학서적이며 보물 중에 보물이올씨다.




동의보감 서문을 읽어 보시면 동의보감이 어떤 책이며 그 가치를 알 것입니다.

그를 소개하도록 하죠.

첫책 첫 귀절에 나오는 귀절입니다.



東醫寶鑑


醫者雅言軒岐 軒岐上窮天紀 下極人理 宜不乎記述 而猶且說問著難 垂法後世

則醫之有書 厥惟遠哉 上自倉越下逮劉張朱李 百家繼起 論說紛然 剽竊緖餘 爭立問戶 書益多而術益晦 其與靈樞本旨不相逕庭者鮮矣 世之庸醫 不解窮理 惑倍經訓而好自用 惑泥故常而不知變 眩於裁擇 失其關鍵 求以活人而殺人者多矣   我宣宗大王 以理身之法 推濟中之仁

 

중간 생략

 

萬曆三十九年辛亥孟夏 崇祿大夫行吏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賓客 臣李廷龜奉敎謹序.

萬曆四十一年十一月日 內醫院奉敎刊行監校官通訓大夫內醫院直長臣李希憲

通訓大夫行內醫院副奉事臣尹知徹.

 

 님께서는 위의 내용을 한번 읽어 보셨는지요?

적어도 한번은 읽어 그 내용을 파악해서 낡은 것인지 써도 될 것인지 평해야지 않겠습니까?

님께서 하시는 자세는 마치 남대문을 구경하지도 않고 문턱이 있다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런지요?

그럼 아래에 동의보감 서문을 답변인이 번역한 아래에 싣겠습니다.

 

 東醫寶鑑(동의보감)

序(서)
의학 하는 자들은 늘 황제와 기백을 말한다. 황제와 그의 신하 기백은 위로는 하늘의 도리를 깨닫고, 아래로는 사람의 살아가는 이치를 모두 알았었고, 그러나 굳이 글 같은 것을 남기려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의문 나는 점과 어려운 것을 나타내어, 후세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세워 놓았으니, 의학 하는 사람들에게 의학 서적이 있어 온지가, 생각해 보면 꽤나 오래 되었다.

 

* 이 책을 엮으며 어줍잖은 해설은 삼가려 한다.
그러나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의자아언헌기(醫者雅言軒岐에 관한 것이다.
헌기(軒岐)는 동양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의 황제와 그의 신하, 즉, 헌(軒)은 헌원황제(軒轅黃帝), 기(岐)는 기백(岐伯)이라는 신하를 일컬음이다.
황제내경은 황제와 그의 신하 기백을 비롯하여, 소사(小師), 뇌공(雷公), 소유(小兪), 백고(伯高) 등의 신하들과 문답형식으로 이뤄진 소문(素問) 81권, 영추(靈樞) 81권 총 162권으로 이뤄진 책이다.
 
위로는 편작扁鵲 아래로는 유완소劉完素, 장종정張從正, 주진형朱進亨, 이고李杲등), 百家繼起 수많은 학자들이 있어), 論說紛然 콩이다 팥이다 의견이 분분하였고), 剽竊緖餘 부분적으로 슬쩍 훔쳐다), 爭立問戶 모두가 제것인양 논리를 내세워 저마다 최고라고 다툼이 생기니), 書益多而術益晦 의학서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의술을 행하기는 더욱 암담해져), 其與靈樞本旨不相逕庭者鮮矣 황제내경 영추의 근본 취지와는 넓은 정원과 좁은 길처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말았다).
世之庸醫 세상의 속 좁은 의원들은), 不解窮理 이치를 탐구할 생각 따윈 하지 않거나), 惑倍經訓而好自用 혹은 경전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惑泥故常而不知變 또는 늘 하든 고정적인 관념의 탈을 벗어 변화하려는 들지 않고), (眩於裁擇 병을 분별하고 치료 방법을 선택을 하는데 있어 어지러이), 失其關鍵 그 시기와 요점을 놓“?말아), 求以活人而殺人者多矣 사람을 살려내는 방법을 가지고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 유장주이劉張朱李는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라고 한다.
유장주이의 유劉는 유완소劉完素로, 중국 금나라 시대의 명의로서 선명론(宣明論), 원병식(原病式) 등을 지은 사람으로 호(號)는 통현처사(通玄處士)이고 약재를 주로 차가운 쪽을 잘 사용하여 한량파(寒凉派)라고도 한다.
유장주의劉張朱李의 장張은 금나라의 명의 장종정(張從正)으로 유문사친(儒門事親書)를 지은 사람으로 호(號)는 대인(戴人)이다.
주(朱)는 원나라의 명의로 주진형(朱震亨)으로 단계심법(丹溪心法)을 썼으며 호는 언수(彦修) 또는 단계(丹溪)이다.
이(李)는 원나라의 명의로 동원십서(東垣十書)를 지은 이고(李杲)로 호(號)는 동원노인(東垣老人)이다.
연대로 보아서는 유장주의 순서이며, 왜 이를 설명하느냐 하면, 이런 분들이 아니었으면 동양의학 원론이 정립이 안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고 또한 본문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정도로 알고 넘어가기 바란다.
그럼 서문 읽기로 다시 들어가자.
   
우리 선종대왕께옵서, 몸을 다스리는 법으로, 만백성을 구제하려고, 의학에 마음을 두시어, 병들어 고통받는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려 마음 아파 하셨다.

일찍이 병신년 1596년에, 태의 허준을 불러 하교하시기를, 근자에 중국 명나라의 의학서적들을 보면, 모두가 용렬하고 천박하여 노략질해 모은 것만 같아, 도무지 볼만한 책이 없으니, 여러 의학서적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편성 해보도록 하여라.

또한 이르시기를 사람의 질병은, 대개 조리와 섭생의 잘못으로 생겨나는 것이니, 수양을 우선하고, 약은 버금이어야 할지어다. 
책을 편집하는데 있어서 모든 의학서적들이 양이 많고 커서 번거로우니, 요점 정리에 주력하여 쓸 것이고, 의원과 약도 없는 빈촌과 벽지의 백성들이, 가엾이 일찍 죽는 자가 많은데, 우리 조선은 향약이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안타깝게 그를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당연히 약들을 잘 분류하고 향약의 이름까지도 함께 기록하여, 백성들의 알기 쉽고 사용하기 쉽도록 하여라.

분부 받고 허준은 물러나, 유의 정작과,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편찬국을 설치하여, 대강의 줄거리를 작성할 무렵에, 정유대란을 당하여, 모든 의원들의 뿔뿔이 헤어져, 행하든 일이 중단되게 되고 말았다.

난리가 진정되고 후에 다시 대왕께서 허준을 불러 혼자서라도 찬집을 완성해 보라며, 궁중에 보관해오고 있던 500여권의 서적을 내어주시며 이를 참고 자료로 삼아라 하셨고, 그러나 아깝게도 편찬 작업을 절반도 이루기 전에 선조 대왕은 승하하고 마셨고, 현재 임금 광해군께서 왕위에 오른 삼 년 경술 1610년에, 허준은 마침내 편찬작업을 마치고 임금께 진상하여, 스스로 이름하여 동의보감이라 하니, 凡二十五卷 책을 모두 합하여 25권이다.

광해군께서 진상한 책을 보시고 가상히 여기시어, 하교하여 가로되, 양평군 허준이, 선왕께서 살아 계실 때, 의학서를 편찬하라는 특별한 분부 받들어, 생각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쌓아뒀다가, 귀양가서 숨어 지내고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그 노력을 그치지 않아, 이제서 책 한 질을 올려바쳤으니, 선왕께서 명하신 책으로 인하여 생각하니, 기쁜 일이 이루어  지긴 하였으나 상복을 입고 있는 과인으로서는, 슬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하시고, 태복마 한 필을 허준에게 하사하며, 노고에 보답케 하고, 즉시 내의원에 명하여 설청하여 인쇄해서, 경향 각지에 널리 배포하도록 하라하시고, 또한 제조 이정구에게 서문을 기가 똥이 차게 지어서 책  머리에 속히 달라 하셨다.

신이 몰래 가만히 생각해 보건 데 태화의 기가 한번 흩어져, 육기의 부조화를 이루면,  위독한 병이 들어 낫지 않고 돌림병이 되어, 백성들의 재해를 입게 됨으로, 의약으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요절을 구제하는 것이, 실로 제왕의 어진 정치가 정치 중에 우선 인지라,  하지만 책이 없으면 내용을 실을 수 없고, 책이 있으나 잘 선택하여 싣지 않으면 정미롭지 못하고, 잘 선택하여 실으나 그것이 僅?못하면 이치가 불분명하고, 널리 전하지 못하면 혜택이 고루 미치지 못하는 것, 이 책이야말로, 예전 것과 오늘날의 것들을 고루 묶은 데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절충하여, 근원을 깊이 탐구하고, 그물을 치듯 요점을 걸러냈으니, 상세하되 산만하지 않고, 묶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경과 외형으로 시작하여, 잡병과 여러 가지 방으로 나누어, 맥결, 증론, 약성, 치법, 섭생, 양성의 요점과 침구 등 여러 법규에까지, 두루 갖추지 않은 게 없고, 짜임새가 정연하고 문란하지 않으니,  병이 비록 수백 수천 가지 증세라 하더라도, 보사와 완급을 알아 대응하면, 모두다 이치에 들어맞을 것이니, 굳이 옛날의 서적에 마음을 둘 필요 없고, 근래의 약 방문들도 살펴볼 필요 없이, 옳게 분류해진데 따라 방을 찾으면,  중첩하여 거듭나오니, 증상에 따라 약을 투여하기만 하면, 계약을 맺은 것처럼 척척 틀림없이 들어맞을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의학 하는 자들이 보배로운 거울이라 믿으며, 세상을 구할 좋은 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모두는 선왕께서 내려주신 묘한 지혜이며,  또한 우리 성왕께서 거룩하신 선왕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높은 뜻이니, , 이는 백성과 사물을 아끼는 덕이라, 이롭게 사용하여 후한 삶을 살게 하는 길로서, 앞뒤를 헤아려,  서로 화합하고 길러내는 정치가, 바로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말들 하기를, 어진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이로움이 두루 넓다 하였으니, 이 어찌 그렇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萬曆三十九年辛亥孟夏(만력삼십구년 신해맹하 1611년), 崇祿大夫行吏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賓客 臣李廷龜奉敎謹序(숭록대부행이조판서겸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세자좌빈객 신이정구봉교근서 신하 이정구가 삼가 받들어 서문을 짓다).
萬曆四十一年十一月日 內醫院奉敎刊行監校官通訓大夫內醫院直長臣李希憲(만력사십일년 1613년 십일월일 내의원봉교간행감교관통훈대부내의원직장신이희헌)
通訓大夫行內醫院副奉事臣尹知徹(통훈대부행내의원부봉사신윤지철)

 

동의보감은 중국의 황제내경을 경전으로 수많은 의학서적 들을 총정리한 의학사전으로서, 한자를 읽을 줄 알고 그 기초만 있다면 사실은 그리 공부하고 자실 것 없이 찾아서 쓰면 되는 의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은 중국서적을 베껴쓴 것이라고 동의보감을 폄하하려 하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의 소산물로 일본이 우리 의학을 말살하기 위하여 폄하하려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기간에 모든 의학서적을 일본으로 빼앗가 갔다고 할까요.

그 서적이 탄생하게된 큰 배경이 되는 세종대왕시절의 의방유취라는 방대한 의학서적은 아직도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한체입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은 다행스럽게 그 유실을 막기 위하여 여러곳에 나눠 보관하라는 광해군의 지시로 많은 전란 속에서도 그 자취를 감추지 않았으며, 민간에서도 좋은 밭떼기를 서너필지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임에도 경향각지의 의원들이 그를 보관하고 있음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오늘날 중국에는 고서적 등 옛날 물건들을 경맥하는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비싼 각격을 홋가하는 서적이 황제내경, 상한론, 금궤요락, 온병학 등의 동양의학 4대 경전을 제치고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국비를 들여가며 동의보감 연구에 몰두하여 전세계 생약 시장의 절반 이상 70-8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은 중국으로 생약에 대한 관심을 가져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그 보물이 바로 님과 같은 생각으로 푸대덥을 받고 그 원본은 어떤 것이 원본인지 마져 모르고, 규장각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은 편찬한 당시 중국 명나라에서 우리 조정에 사신을 보내와 사정하다시피 하여 가져갔고,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명나라는 망했지만 그 뒤를 이은 청나라에서도 우리 조정에 요청을 하여 가져가 지금 현재의 중국에 있는 동의보감이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져간 동의보감에 대한 극찬을 보면 동양의학 종주국의 자존심도 버리고 최고의 의서임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에도 동의보감은 전해졌는데 세계 3대 안에 드는 의학사전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 동의보감을 영어로 번역하여 국익을 올리는데 재빠른 머리를 굴리고 있죠.

 

여기서 동양의학이 우수성을 간단히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동의보감이 편찬되는 당시의 동서양은 전쟁도 전쟁이려니와 돌림병으로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그 중에 유럽의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을 치루는 와중인가요.

흑사병이 나돌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 인구를 줄게한 원인이 되기도 하죠.

물론 중국에도 흑사병이 돌았으나 그 피해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 답변인은 이것이 동양의학으로서 대처한 결과가 아닌가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 동양 삼국, 즉, 중국, 우리나라 일본, 인도까지를 합친다면, 생약으로서 건강을 지켜온 나라들이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주장이 억설이라고 생각하시면  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동양의학에 기댈려면 동의보감으로 속히 돌아가 현대인에 맞는 치료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이 나라 한의학이 살길이요, 나아가 우리가 지닌 천혜적 자연여건과 지니고 있는 노하우를 살릴 때에 우리 국민이 더 건강하게 삶은 물론 의학수출로서 경제적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전하고.

동의보감에 대한 인식을 조금 달리하여 주셨으면 어떨까 하는 뜻을 전하며 이만 접습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7&dir_id=706&eid=KmSrmZ2Ybo0CWrAqU0c6kcT6FJHw7UDb&qb=64+Z7J2Y67O06rCQIO2PhO2VmA==&enc=utf8&section=kin&rank=1&sort=0&spq=0&pid=fFQuwloi5UsssbYlhWlsss--047923&sid=SnfCwpKld0oAAGvgR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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