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다함의 매화

by 디케 posted Jul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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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의 매화

사다함이란 미실과 서로 정을 나누던 어린 사내였고,
사다함의 매화라는 것은 
비오는날을 예측할 수 있는 달력을 사다함이 미실에게 준것이지요.
미실에게 힘의 원천을 준 것이겠죠.

미실이 다른 모든 사내들은 자기를 탐하고 뭔가를 얻고자 했지만 ,
그는 나에게 한없이 주기만 했다(?)라고 말했죠?



사다함이란?

진골 : 신라시대 신분제인 골품제의 한 등급
진골 출신으로 내물마립간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급찬(級飡) 구리지(仇梨知)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생김새가 깨끗하고 뜻이 곧아 사람들이 화랑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신라에 기울어 있던 대가야가 백제와 가까워지자 562년(진흥왕 23) 왕은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로 하여금 정벌을 명령했다. 이때 사다함이 15~16세의 나이로 종군하기를 청하자, 왕이 처음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가 태도가 간절하고 뜻이 확고하여 마침내 허락했다. 그가 귀당(貴幢) 비장(裨將)으로 출정하자 따르는 낭도가 많았다.
먼저 국경 근처에 이른 그는 장군의 허락을 받아 기병 5,000명을 이끌고 기습공격하여 대가야를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포로로 잡은 가야인 300명(200명이라고도 함)을 받았으나 곧 놓아주어 양인(良人)이 되게 했다. 또 토지를 주었으나 사양하는 것을 왕이 강권하자 알천(閼川)가의 불모지를 받았다(또는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도 함). 일찍이 무관랑(武官郞)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는 친구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그가 병으로 죽자 매우 슬퍼해 7일 만에 자신도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사다함의 매화는 서역국의 달력을 뜻 합니다.

미실이 사다함이 가지고 온 달력을 보고 비가 오는 날을 예측 하게 되는 것인데, 당시는 왕권은 하늘이 내렸다 하여 왕권이 = 신권과 동일시 되는 사회 였습니다. 미실이 비가 오는 날을 예측 함으로써 신권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니 비를 내린 미실은 하늘과 통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녀가 항상 미실과 함께 있는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미실의 힘은 신권에서 오는 것이고 이는 정확한 일기 예측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미실을 무너 뜨리기 위해서는 이 일기를 예측 하는 힘을 빼앗아야 하는데 이 달력은 매년 변하게 됩니다. 당시 한반도는 정확한 일기를 예측 하기가 힘들었고 서역에서 일정 주기로 일기를 예측한 달력을 만들면 이를 수입 합니다.
미실과 함께 있던 스님은 아마도 그 서역의 달력을 해석 할수 있는 천축 말을 할 수 있는 외국 승려로 예상 됩니다. 신라에서 서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란 어렵습니다.
그 스님은 어딘가를 통해서 망명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신라로 들어온 외국인 승려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선덕여왕이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첨성대를 만들었죠 아마 작가가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쓴것 같습니다. 이건 스포 인것 같은데 선덕여왕 초반부를 보면 덕만이도 달력을 선물 받고 서역말을 능숙하게 구사 하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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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과 같은 초기불전에서는 불교의 성자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이 그것이다. 
번뇌를 끊은 정도에 따라 성자들의 지위가 달라진다. 

수다원이란 잘못을 계속하며 할 때마다 반성하는 사람이다. 사다함이란 잘못을 두번하며 그 이후로는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나함이란 잘못을 한번하며 그 이후로는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라한은 오온에 끌려가지 않으므로 잘못을 하지 않는다. 오온이란 색, 수, 상, 행, 식을 말한다.
참고 : http://blog.daum.net/sansumoo/7384578?srchid=BR1http://blog.daum.net/sansumoo/7384578

진흥왕
十五年 秋七月 修築明活城 百濟王明與加良 來攻管山城 軍主角干于德·伊耽知等 逆戰失利 新州軍主金武力 以州兵赴之 及交戰 裨將三年山郡高干7)都刀 急擊殺百濟王 於是 諸軍乘勝 大克之 斬佐平四人·士卒二萬九千六百人 匹馬無反者
15년(553) 가을 7월에 명활성(明活城)을 수리하여 쌓았다. 백제 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해 왔다. 군주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新州)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6백 명을 목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二十三年 秋七月 百濟侵掠邊戶 王出師拒之 殺獲一千餘人 九月 加耶叛 王命異斯夫討之 斯多含副之 斯多含領五千騎先馳 入檀門 立白旗 城中恐懼 不知所爲 異斯夫引兵臨之 一時盡降 論功 斯多含爲最 王賞以良田及所虜二9)百口10) 斯多含三讓 王强之 乃受 其生口放爲良人 田分與戰士 國人美之
 
23년(562) 가을 7월에 백제가 변방의 백성을 침략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막아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斯多含)이 부장(副將)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기(旗)를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함에 사다함이 으뜸이었으므로, 왕이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으나 사다함이 세 번이나 사양하였다. 왕이 굳이 주므로 이에 받아 포로는 풀어 양인(良人)이 되게 하고 토지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참고 :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1012&s_work=view&no=307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