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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철학
2011.11.26 17:58

세종대왕과 루터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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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루터의 종교개혁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위대하신 분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서라고 소문을 내 민심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진짜 목적은 정말 따로 있었다. 그가 조선의 왕이 되었을 당시, 고려는 멸망하고 나라는 바뀌어서 조선이라는 새 나라가 되어 유교(정확하게는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 사상으로 삼았지만, 아직까지도 백성들은 불교에 따라 생활하고 있었다. 나라는 조선이었건만 백성들은 아직도 고려의 백성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이 점을 확실하게 바꿔 놓아야 했다. 그럴려면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백성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럴려면 유교를 설명해 놓은 유교 경전 등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알려줘야 했는데, 그때 당시 쓰던 한자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백성들에게 가르치기가 불가능했다. 또한 당시 한자를 안다는 것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뚜렷히 구분하는 경계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다가는 그 경계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더욱 안 되었다.


하지만 그는 백성들을 글자도 모르는 상태로 놔두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결코 이롭지 않으며, 백성이 글자를 모르면 오히려 왕 자신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명령한 것을 써 붙인 방이 담고 있는 내용을 백성들이 알지 못하면 큰일이었다. 말로 한다 해도 그것이 왜곡되고 과장되어져 백성들에게 전달된다면 문제가 아닌가.


중세의 권력은 성서에 대한 지식이었으며 그 지식은 교회가 선점하였고 당시 성서는 라틴어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읽기가 어려워 기독교의 말이면 다 믿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점을 악용하여 기독교는 종교의 행위로서는 있을수 없는 일인 면죄부를 판매하게 되었다. 이에 개혁운동이 불붙기 시작해 많은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와 14세기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를 시작하게된 언어의 


http://ko.wikipedia.org/wiki/성경_번역


루터의 종교개혁

  독일 종교개혁운동의 횃불은 1517년 10월 31일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사이면서 신학교수인 루터가 <면죄부(免罪符) 에 관한 95개조 논제>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대학의 성(城)교회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올려졌다. 이 항의문은 마인츠의 대주교(大主敎) 교회의 알브레히트가 재정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판 면죄부에 대해 루터가 그 성사적(聖事的) 효과를 신학적으로 문제삼은 것이었다. 이것이 루터 자신의 예상을 넘어 유럽 전체에 파급되는 대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루터가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교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4,5년 전 그가 수도원 생활의 악전고투 속에서 바울로의 ‘하느님의 뜻’이라는 복음을 재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인간의 영혼 구원이란 인간의 선행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가장 깊은 근원은 구원문의 정확성을 둘러싼 루터의 내적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95개조 논제>는 경제적으로 로마에 의해 많은 수탈을 당하여 온 독일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문제가 일개 수도사가 제기한 신학논쟁에서 독일 국민 전체의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로 확산되어 갔다. 당초 교황 레오 10세는 이 문제를 경시하였다가 문제의 해결이 어렵게 되자 유화책을 강구하기도 하였으나 루터는 1519년의 J.에크와의 라이프치히 논쟁 때 결정적으로 가톨릭교회와 정면대결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 논쟁에서 루터는 보헤미아의 후스를 본떠 교황과 교회회의의 가류성(可謬性)을 주장하고 그 권위의 절대성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1520년 6월 드디어 루터에 대한 파문(破門)이 단행되었다.

  이어 1521년에 루터는 보름스 국회에 소환되어 황제의 심문을 받았는데, 여기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관철하였다. 그는 심문을 받고 돌아가다 작센의 선제후(選帝侯:중세 독일, 곧 신성로마제국의 제후 가운데 황제의 선거에 관여할 수 있었던 7명의 제후) 프리드리히 현공(賢公)의 호의로 바르트부르크성(城)에 보호되어 1년에 걸친 체재 중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이 루터역 성서는 문학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독일 국민의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이처럼 루터의 종교개혁 핵심은 교회개혁에서부터 시작된다. 첫째로 교회 예배의식(儀式)이 크게 달라졌다. 성직자 중심의 예배로부터 예배자 모두가 참여하는 예배로,의전(儀典)중심의 예배로부터 ‘말씀’ 중심의 예배로 변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직자 중심의 예배였다. 예배는 라틴어로 진행됐고 성직자 외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진행된 예배에서 회중은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성경은 성직자만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성만찬에서 일반 신도들은 떡만 받고 포도주 잔은 받을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뜻하는 포도주를 실수로 흘려서는 안된다는 구실이었지만 사제들의 특권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루터는 이러한 모든 관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예배는 모든 독일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로 진행하게 했고 따라서 예배자들은 오랫동안 막혔던 귀가 열리게 됐다. 성만찬에서 모든 예배자는 떡과 잔을 받게 됐다. 루터는 또한 찬송가를 직접 작사?작곡해서 모든 예배자가 한목소리로 찬양하게 했다. 모두 참여자가 되어 예배는 활기가 넘쳤고 교회에는 신선한 새 바람이 불게 됐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루터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예배의 중심에 놓았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력이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요,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 선포된다고 루터는 주장했다. 따라서 당시까지 틀에 짜인 정형화된 의전 중심의 예배로부터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뀌게 됐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강조했던 루터는 그 자신이 위대한 설교가였다. 그는 평생토록 비텐베르크 교회 강단에서 2000차례 이상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루터의 교회개혁은 이런 외형적 변화와 함께 성경을 모든 크리스천이 읽을 수 있는 ‘열린 성경’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루터 이전까지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크리스천들에게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닫힌 책’이었다. 우선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필사본’ 성경시대에 성경은 보통사람들이 살 엄두도 낼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인쇄술이 발달된 이후에도 인쇄된 성경책은 일반인들이 읽을 수 없는 라틴어 성경이었다. ‘만인 제사장’을 주장했던 루터는 모든 크리스천은 성경을 읽어야 하고,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사실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이전에도 독일어 성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13세기에 독일어로 성경이 번역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어 성경은 전혀 보급되지 않았다. 번역도 난해할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독일에서 독일어 성경을 인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독일어는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드러내는 데 부적합한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일어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번역작업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시작됐다.  1521년 독일 황제 카를 5세는 루터를 범죄자로 정죄하는 ‘보름스 칙령’을 선포했고 루터는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때 작센주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납치극’을 벌여 루터를 그의 영지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채로 피신시켰다. 루터는 이 성채에서 가명을 쓰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러 변장을 한 채 10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이 기간은 루터에게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었다. 루터가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바로 이 기간이었다. 은둔생활이었기 때문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그는 성경번역에만 집중했고 12주만에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수난의 시간에 하나님은 루터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부어주신 것이다.

  루터의 번역은 딱딱하고 난해한 축자적 번역이 아니었다. 누구나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번역이었고 생동감이 넘치는 유려한 문체였다. 성경 번역에서 루터는 상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장 28절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당시 유럽세계가 사용하던 라틴어 성경은 천사가 마리아를 부를 때 ‘은혜가 넘치는 자여’(gratia plena)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에게 ‘넘친다’는 말은 그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잔에 ‘맥주가 넘친다’는 것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따르지 않고 ‘은혜를 크게 받은 자여’holdselige)라고 번역했다. 이런 것을 보면 루터가 성경말씀 한 자 한 자를 얼마나 심사숙고하며 세심하게 번역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 머물고 있던 사이에 비텐베르크에서는 1521년 카를슈타트(본명은 Andreas Bondenstein)가 지도하고 있던 과격분자들이 급격한 혁신운동으로 이른바 ‘비텐베르크소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미사의 폐지, 평신도에 대한 성배(聖杯) 부여, 성상(聖像) 파괴 등은 개혁운동의 논리적 귀결이라 하나, 원래 보수적이었던 루터는 이를 급속하게 실행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 소요는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서 돌아온 뒤 진정되었지만 그 여파는 1522년의 ‘기사(騎士)의 난’ 농민전쟁(1524∼25)으로 발전하였다. 이 무렵부터 개혁운동은 제2단계에 들어가 루터는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재세례파(再洗禮派)와 싸우는 양면작전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에라스무스와의 ‘자유 의지론’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인문주의와도 결별을 하여야만 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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